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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공연의 경쟁력

  • 송고 2023.11.23 06:00 | 수정 2023.11.23 06:00
  • EBN 관리자 외부기고자 ()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김작가

지하철은 철저히 시간을 죽이는 공간이다. 1자리에 앉은 사람은 못채운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서 있는 사람들은 열차가 멈출 때 마다 호시탐탐 빈자리를 노리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 무엇을 보는 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웹툰을, 누군가는 드라마를, 누군가는 유튜브 영상을 볼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청각과 시각을 활용하여 지루한 출근길을 채운다. 사람들의 시간을 채우고 빼앗는 것, 컨텐츠다.


언젠가 IT쪽 사람들이 음악을 컨텐츠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꽤나 불편했다. 음악이 쌓아온 지난 세기의 가치와 로망 같은 걸 무시하는 듯 보였다. 창작자의 고뇌, 음악이 주는 흥분과 기쁨을 날려버리고 주가로 대변되는 수치만을 언급하는 이들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영국의 록 뮤지션 모리씨(Morissey)는 메이저에서 인디 레이블로 이적하면서 “메이저 레코드의 수장들은 더 이상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경영학, 회계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으면서 음악 대신 숫자만을 들여다보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20세기 음악 소년들이 IT시대에 뭘 느끼든, 세상은 흐르고 변한다. 음악은 청각의 울타리안에서 힘을 쌓고 역량을 키워왔다. 거실의 전축, 가방속의 워크맨, 휴대용 CD플레이어와 MP3플레이어까지 그랬다. 스마트폰 초기 시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의 세계, 즉 영상은 청각의 울타리를 쉽게 넘어올 수 없었다. 둘은 다른 영역안에서 각자의 시장을 만들어왔다.


기술은 영상의 편이었다. 1980년대 워크맨 유행과 함께 시작된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패러다임은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다. 구매냐 다운로드냐 스트리밍이냐, 혹은 얼마나 좋은 음질이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더욱 편하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을 볼 수 있는 기술은 인터넷의 보급 이후 가파르게 발전해왔다. 패러다임이란 게 성립할 틈도 주지 않고 감각의 세계를 장악해왔다. 무엇보다 유튜브의 등장 이후 자기 채널으로도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욕망이 폭발하면서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플랫폼보다 빠르게 다양한 컨텐츠들이 등장했다. 거기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대중화로 세상은 컨텐츠의 은하가 됐다. 음악이 가졌던 청각의 울타리도 허물어졌다.


그리하여 음악과 영상, 그리고 만화와 소설이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위에서 경쟁한다.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말이 고리짝 경구에서 냉혹한 현실이자 비즈니스 아젠다로 재탄생했다. 시간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애석하게도, 애초에 청각은 시각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뇌에서 시각을 관장하는 영역은 아예 다른 감각 영역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한다. 그것도 가장 크다. 진화를 통한 생존의 결과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청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음악은 시각으로 넘어왔다. 1980년대 초반 MTV가 개국하며 ‘듣는 음악’을 ‘보는 음악’으로 바꿨던 거다. 그 때 이미 영국 밴드 버글스가 ‘Video Kilees The Dadio Star’라는 노래를 발표했고, 이 노래는 춤을 비롯한 시각적 요소들로 정상에 서는 음악이 나올 때 마다 사골처럼 우려먹어졌다. 그 또한 수십년이 지났고, 감각의 울타리는 무의미해졌다. 그 때의 개탄은 차라리 낭만적으로 들린다.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기간, 스트리밍 시장이 성장했다. 자산 버블의 수혜로 고급 오디오 시장도 커졌다. 그러나 영상 플랫폼은 그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시간을 빨아들였다. 코로나19의 공포가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은 결국 영상에게 패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경쟁우위는 있다. 공연이다. 디지털과 스마트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의 독점자. 청각과 시각을 레코딩 기술의 탄생 이전으로 되돌리는 경험의 컨텐츠. 음반의 시대가 끝나면서 오히려 성장해온 시장이다. 펜데믹이 끝나면서 폭발했다. 과거 적자에 시달리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2년 넘게 매진됐다. 내한 공연을 비롯, 희소성이 높은 공연 또한 문만 열면 매진이다. 한국에 수차례 왔던 전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 내한 티켓이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고, 추가 공연에 추가 공연까지 열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임영웅 등 중년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의 티켓 파워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만나는 많은 뮤지션들이 공연 보다는 온라인 컨텐츠에 집중한다. 쉽고, 빠르며, 자극적으로 팔로워와 ‘좋아요’로 관심의 정량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의 본질은 역시 공연이다. 사실 레코딩 이전에 음악을 접하는 형태였다. 음악 문화의 시원이다. 다른 ‘컨텐츠‘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롯이 시간을 무대위에 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자리다. 창작자와 기획자 모두 더 나은, 경쟁력있는 공연에 집중할 때 현대의 시간 전쟁에서 우월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음악컨텐츠기업 일일공일팔 컨텐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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