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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노동의 이미지

  • 송고 2024.07.31 06:00 | 수정 2024.07.31 06:00
  •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노동! 노동? 노동...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필자는 대학에서 노동법을 처음 접했을 때, 학교에서 선후배 동료들과 4.19.행사 등을 나갔을 때, 하나 같이 일체로 띠 두른 노조원들과 커다란 플래카드, 노동가가 울려 퍼지는 시위현장 등등을 목도 했었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노동’이라고 하면 ‘일자리’, ‘일터’, ‘보람’, ‘직업’, ‘직장동료’, ‘가족’ 등의 이미지보다는, ‘투쟁’, ‘민주화’, ‘파업’, ‘해고’, ‘노사분규’, ‘노동운동가(전태일)’, ‘구속’, ‘소송’ 등의 단어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종종 ‘머리띠’, ‘휘장’, ‘플래카드’, ‘조끼’, ‘두텁고 거친 글씨체’, ‘점거된 회사’ 등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다. 또는 60~70년대 산업화를 직접 겪은 분들이라면 노동이라는 것에 대하여 ‘땀’, ‘근면, 성실, 자조, 협동’, ‘조국 근대화’, ‘산업역군’, ‘중동현장’, ‘해외수출 000억불 달성’ 등등의 이미지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노동 관련 일을 해보면, 법률적으로만 보아도 노동의 분야는 그러한 몇몇 단어나 그러한 이미지에 차분히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노동과 관련한 단어와 이미지는 급변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분야는 광범위하다는 것에 놀라고 무척 정교하고 세련된 분야도 많다는 점을 목도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구적인 임금 관련 법리는 물론이거니와 근로시간 단축도 전면 시행되었고, 직장내괴롭힘·중대재해와 관련한 회사들의 대응은 무척이나 분주하다. 노동의 이슈는 단순히 해고, 징계 외에도 임금, 불이익조치(전보·전직 등), 차별, 직장내성희롱, 직장내괴롭힘 등의 각 분야에서 다면화(다변화)하고 있다.


그 외에도 플랫폼근로자, IT 또는 첨단분야 지식근로자, 근로자성 혼재 자영업자 등에 대하여 근로자성 논의가 계속적으로 보강되고 여러 사각지대에 대한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등의 보호제도도 강화되고 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종전처럼 ‘파업’, ‘직장폐쇄’로 이어지는 극단 상황은 찾기 어렵고, 노사 간에 수시로 단체협약을 맺거나 추가 사항을 협정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 일각에서는 복수노조와 근로시간면제제도를 비판하지만, 그 순기능이 많았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노사간에 부당노동행위나 쟁의행위를 바로 문제 삼기보다는, 그 이전에 노동위원회와 노동청의 조력이 뒷받침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례들은 집단적 노사관계의 각종 매뉴얼과 부당노동행위 매뉴얼 등에서 사례화되고 있고,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조 연합단체에서 내놓는 기준이나 지침도 그 수준이 나날이 고양되고 있다.


그 외에 산업재해와 산업안전의 분야 또한 워낙 쟁점이 많고 광범위해지고 있어 ‘이런 문제도 노동 분야에서 다루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 노동이라는 이미지는 우리네 대한민국 구성원들(정규직 1383만명, 비정규직 812만명 포함)의 삶과 꿈이라는 것보다는, 일련의 가시적인 사건사고들 또는 노동단체나 노동 관련 조직의 집단적인 행동에 일응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노동이라는 이미지는 ‘사회변혁을 위한 급진적인 것’ 또는 뭐 ‘그러저러한 것’이라고 만연히 뇌리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그 연원을 따져보면, 역사적으로 정치적인 의도나 사회적인 변화에서 비롯한 경우인 것이 많다. “사람이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고 한다(카이사르). 대중은 보고 싶은 현실을 신뢰하고,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은 철저하게 외면한다. 맹수가 달려들면 타조가 머리를 땅에 박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대중은 전체적인 위기나 위험의 상황에서도 자신에게만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노동의 현실에 있어서도, 암흑과 광명의 극단은 존재할 수 있다. 경기 호황과 맞물리는 실업률 0%, 임금시장의 상향평준화 등등. 그 반면 대규모 불황과 고용시장(일자리) 붕괴, 저임금-실업의 악순환, 파업-공장폐쇄 등등. 이처럼 양극단의 사실을 분명히 직시하고 그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히틀러나 스탈린은 독일과 소비에트의 노동자들을 이끌면서도, 노동의 이슈와 이미지를 철저하게 정치화했다. 히틀러는 노동이 마치 정치적인 과정의 산물인양 써먹었고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악용했다. 첫 문제의식은 좋았다. 본래 퇴역군인 히틀러가 수년 동안 여러 일터에서 날품을 팔던 시절에 그는 독일사회에서 노동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히틀러는 노동이라는 문제, 노동자의 현실을 잘 모르면서도, 전 독일의 ‘노동’ 단체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한 축, 신진 세력으로 등장한 이천만명의 도시노동계급을 정치적 표밭으로 생각했고 과감하게 독일노동자당에서 우뚝 선다.


물론 히틀러는 평생 노동이라는 것을 꾸준하게 해본 적이 없는 배짱이 한량이었지만, 노동자당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는 문제(위대한 독일)에는 관심이 많았다. 1920년대 중반 대공황이 닥치자, 히틀러는 독일에서 실직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대규모 세력 규합에 나선다.


그 후는 역사가 증명한다. 히틀러는 제3제국을 운운하면서 보고 싶은 현실을 극대화하고 5천만 독일인에게 집단적인 최면을 걸었다. 지성인들은 그 허무함과 맹랑함을 알아차렸지만, 히틀러는 선전, 선동, 숙청 등의 여러 정치적 기술을 동원해서 오로지 국가사회주의(나치즘)를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 종국에는 수천만 독일 노동자의 꿈은 변질되어, 십수 년의 전쟁으로 끝을 맺는다.


스탈린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레닌과 볼셰비키당의 유훈은 무시하고, 위대한 소비에트를 만들기 위해 노동을 신성화(?)했다. 소비에트의 노동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최면을 걸었다. 그는 불모지(시베리아, 우랄산맥 등)에 소비에트민중을 보내서, 수백만명이 종사하는 집단노역장을 운영했다. 스탈린은 “(민중의) 노동이 우리 소비에트의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매년 몇 수십만명씩 굶주림과 추위에 근로자들이 죽었다.


그들의 편지글에는 “이건 노동이 아니고 여긴 지옥이다”, “인간이길 포기했다. 노동은 무가치하다”라는 절규들이 섞여 있다. 스탈린의 정치는 전국적 노역화에서 그치지 않고 제2차세계대전에는 수천만명의 노동자·농민들을 강제징용시켜 희생시키는 파국을 맞이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히틀러는 소소한 (순수) 노동정당으로 활동했었고 그 후 전국정당이자 집권당으로 변모한 첫 사례가 된다. 스탈린의 경우도 실제로 도시노동자들의 기반 위에서 소비에트가 형성되었기에 (산업화 시기) 노동(노동자)이 이룩한 첫 사회를 창조한 것이 맞다.


이처럼 히틀러나 스탈린이 100년 전에 이미 노동정당·노동정권을 이끌었다는 것은, 1) 노동이라는 이미지, 2) 국민의 삶에 가까이 있다는 것, 3) 선진 산업사회의 청사진에 적합하다는 것을 정치적으로 알아차렸다는 점에서 기초한다. 이처럼 노동은 독일과 러시아에서 정치화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 직후 철도 노동자 파업사건, 1987’노사분규의 폭증의 경우 노동운동의 선구적인 면모를 보이면서도 정치적인 상황 또한 엿보이기도 한다. 그 후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가 각기 결성되었고 그들의 각 조직률이 10%를 내외하면서도 여전히 수십 년간 근로자(노동자)계층을 전체를 대표하는 세력화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노동의 세력화는 사회 내에서 여러 사건사고로 형성되거나, 독특한(?) 정치인들이 사회적으로 결집시킨 것일 수도 있다. 그에 따라 노동에는 사건사고와 관련한 이미지, 정치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하지만, 본래 노동의 이미지는 이처럼 외력적이거나 타의적, 내향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근로자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이미지에 대하여도 과감한 사고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이슈를 발굴하고 노동의 문제에 대하여 서로 교감을 가지면서 제도나 정책, 그리고 여러 사회보장적인 지원을 고르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산업화의 역군이라는 이미지, 조국의 위대함을 일군다는 이미지, 자본과 사용자에 대항해야 한다는 이미지보다는 노동·근로자라는 것이 본연히 가지고 있는 내재된 이미지(印象)를 외향(外向)적으로 원심(遠心)적으로 분출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더 이상 노동의 이미지, 노동의 인상(印象)이 ‘무언가’에 의해서, ‘누군가’에 의해서 구태의연하게 잔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 노동사회를 위한 발디딤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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