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 09 | 17
23.3℃
USD$ 1,335.3 -0.6
EUR€ 1,479.6 -5.4
JPY¥ 921.8 7.4
CNH¥ 187.6 -0.0
  • 공유

  • 인쇄

  • 텍스트 축소
  • 확대
  • url
    복사

[e코멘터리] 이복현의 발전, 금감원의 발전

  • 송고 2024.03.23 06:00 | 수정 2024.03.23 07:03
  • EBN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 제공=금융감독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 제공=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11층 중간 회의실엔 역대 퇴임한 금감원장 사진이 걸려 있다. 이헌재 초대 원장부터 정은보 원장까지. 언제부턴가 금감원장 자리는 애초부터 다음 자리를 위한 도구가 됐다. 금감원장 타이틀을 단 수장의 위상은 금융권의 저승사자와 같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이복현 금감원장은 윤석열 사단의 막내인 특수통 검사 출신. 그는 역대급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오비이락일까. 주도면밀한 기질 때문일까. 이 원장은 취임 후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단기자금 시장 경색, SVB·크레디트스위스 등 해외 은행들 파산 사태, 새마을금고 뱅크런 등의 위기 상황에서 민생·상생금융 조성으로 임기 1막을 마무리 지었다.


2막에선 더 민감한 이벤트로 시장을 종횡무진했다. 금융지주 부회장직 제도를 퇴출시키고, 이자 장사로 고수익을 낸다는 비판을 받는 은행들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기도 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감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전면 검사와 자율배상안 제시, 글로벌 공매도 조사로 일정을 빽빽이 채워가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이 원장이 제2의 태영 사태를 막기 위해 직접 나서 건설업계와 금융권을 중재했다. 금감원장이 시장 일을 두고 중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시장도 웬일인지 이 원장의 중재가 이해된다고 했다. 중재 회의에 참여한 한 금융지주 수장은 “이 원장이 열심히 나서서 PF 사업장을 발전적으로 재구조화하자고 하는 데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 지주는 PF 업력이 많은 회사로 ‘경직된 PF 사업장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자’라는 취지의 이 원장의 제안에 공감한다고 했다.


이 원장이 성사한 중재는 제법 된다. 태영 사태 때도 본인이 나서며 태영그룹 워크아웃 성사 물꼬를 직접 텄고 레고 사태 때도 기획재정부를 설득했다. 이쯤 되면 금융당국의 손흥민, 메시와 같은 구원투수의 이미지가 겹친다. 시장에서 그동안 우려했던 ‘금융검찰원’이 한 일이 아니길, 곧 있을 총선 일정에 영향받은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세간의 이런 우려를 아는 듯 이 원장은 한 사석에서 “제가 빨리 떠나기를 바라는 두 종류의 집단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하나는 우리 금감원 직원들, 나머지는 금융권 종사자들이다”라고 했다. 금감원 직원들은 역대급으로 강도 높고 속도 빠른 근무 환경에서 원장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결과치를 내놓고 있다. 인제 그만 쉬고 싶다며 백기 든 이도 있다고 들린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막대한 업무량에 몸과 에너지를 갈아 넣는 근무 환경. 이 뿐일까. 이 원장이 때로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란 얘기가 들린다.


금융권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역대 어느 금감원장도 미소로 시장 사람들에 인사하고 명절 선물을 보낸 적은 없다. 먼저 전화를 건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원장은 달랐다.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개인적인 사인으로 이해했다’는 금융사 대표의 전언이다.


이 원장의 친절의 대가는 냉정했다.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민생지원이란 명목으로 강제하다시피 한 상생금융 비용은 은행권에만 2조원(+알파)에 달한다. 금감원이 권고한 ELS 자율배상도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는 분위기인데 역시 조단위 금액이다. 금융당국의 PF 우려에 은행 충당금도 가파르게 늘었다. 당국 방침에 따르다 보니, 아니 이 원장 눈치를 살피다 보니 은행권은 한해 이익을 깎아 먹을 ‘암초’를 곳곳에서 만나는 처지다. 4~5조원대 당기순이익을 버는 금융그룹들이 조단위 비용을 올해 안에 처리한다.


금감원 내부 이야기를 들어보자. 금감원의 한 국장은 지금 원장의 의사결정과 검사 이후 진행들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고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ELS 사태 현장 검사가 이뤄졌고 배상안 마련이 일사천리로 나왔는데 계속해서 대포를 쏘아 올리는 기분이라고 했다. 총선을 의식해서일까, 아닐까.


이 원장이 백브리핑 때 자주 쓰는 표현을 발견했다. 태영 사태와 ELS 현장검사와 제재, 부동산 PF 관련해서 그는 “뜻을 모아 발전적인 얘기, 발전적인 논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워딩을 매번 꺼냈다. ‘발전적(發展的)’은 ‘더 낫고 좋은 상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공기처럼 쓰는 단어다.


이 원장이 ‘더 나아지는 상황’을 추구하는 수장이라면 4월 총선 이후에도 금융권 발전을 위해 종횡무진 활약할 것이다. 또한 남겨질 직원들이 더 발전된 금감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세부 계획도 그의 머릿속에 있길 바란다. 원장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직원들은 새로운 금융 사태를 끌어안고 몸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 한다.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EBN 미래를 보는 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