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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노동의 황금기

  • 송고 2024.01.29 06:00 | 수정 2024.01.29 06:00
  • EBN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외부기고자 ()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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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2030년 한국. 세상이 변했다. 사람이 없다. 일할 사람이 사라진 것은 오래전 일이다. 일할 사람도 없거니와, 심지어 일하고 있는 사람도 없다. 일을 한다는 것은 휴대전화나 전광판 화면에서만 보여질 뿐이다.


일을 하지 않으니, 여름휴가도 없고 출퇴근도 없다. 모든 자산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교환을 하면서 재화가 순환할 뿐, 근로자는 더 이상 무언가 가질 수도 없고 가지려 하고 있지도 않다. 모든 사회보장제도가 식량과 물자를 배급해주고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매번 반복적으로 살아간다.


TV에는 옛날 풍경처럼 드라마가 나오지만, 누구도 ‘저것이 사실이야’라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인구감소 문제가 아니라, 노동 소멸 문제다. 사람은 존재하지만 누구도 일하거나 일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처럼 노동이 계속되지 않는 것은, 결국 세상에 전기나 공기가 사라지는 것만큼의 파급력을 주게 될 것으로 본다.


비관론자의 추측이지만, 있음 직한 허구다. 또한 결코 거짓은 아니다. 2024년 1월 현재 확인된 통계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 중에 20~30대 중 자발적 실업 중에 무계획적인 실업자가 40만명을 훌쩍 넘고 있다. 이유는 ‘그냥 쉬었음’이었다.


반면, 미래에 대한 낙관론자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전망한다. “노동의 황금기가 올 것이다. 세상은 노동자를 존중하게 될 것이고,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노동의 황금기에는 노동자들이 세상의 주인이 된다.”


목적 없는 노동(bullshit job), 하층 노동(chore job)이 전부 사라지고 세계 각국은 낮은 임금 정책을 포기한다. 노동자들은 상하계급도 없고 편차도 줄어든다. 전 세계적인 노동력 부족의 상황에서 노동력을 가진 누구든 ‘갑’으로 협상을 시작한다. 이른바 노동황금기론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미래가 귀결될까. 단순한 가정을 해보자. 만일 사회가 동질적이고 연대감-유대감이 깊게 유지된다면, 노동자들이 사회전체의 부를 배분받으며 노동의 황금기를 누리게 될 것이다. 선진화된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정책에 따라서 생계를 충분히 보장받는 대신, 자신의 노동을 적절하게 경제시장의 가치(돈)와 맞교환하면 된다.


하지만 사회적 연대가 무너지거나 계층화가 가속화한다면, 노동의 황금기는 특정 노동계급과 기술근로자·지식근로자 등의 독점적인 고부가가치 시장(노동의 계급화·노동계층의 분화)으로 전락할 수 있다.


결국 비관론과 낙관론 모두 그럴듯한(兩是) 가능성이 있지만, 북유럽의 사회보장제도 붕괴와 서유럽의 다문화적 노동시장 분파(격차)에 비추어 보면 결국 노동시장의 황금기는 잠깐 빛을 보다가 전체 노동계층의 불가역적 몰락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스웨덴에서는 사회보장이 있어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근로자의 대부분이 25%에 달하는 소득세를 고르게(?) 부담하는 과세(과한 세금)의 나라가 되었다.


최저임금을 단행한 미국과 독일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에게 차등적으로 지급하고자 하지만 전체적으로 임금 테이블은 우상향하고 있다. 정책이 밀어붙여 고공행진 하는 임금은 결과적으로 물가상승, 일자리 부족을 즉시 실현하고 최종적으로는 일자리 계층화와 허드렛일(chore-job) 말살을 가져왔다는 대학(美 버클리)의 예측과 유사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것은 임금 상승이 만드는 신세계가 아니고 노동자들의 정치적인 결속이나 노동조합의 조직력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도 없다.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살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형성되는 미래(未來) 한국에서 새롭게 부상해야 할 사회적인 유대와 연대가 없이는 노동의 황금기는 단지 낙관적인 예상에만 잠시 머물러 있을 거다.


고용과 노동환경이 선순환하는 ‘황금기’는 한국의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임금만이 상승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30년간의 저임금, 저물가를 정책적으로 고수하는 일본(日本)의 방식을 답습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충분한 금전과 재화가 융통하면서, 결과적으로 충분한 고용과 넉넉한 임금이 일반화하여 전체 사회 사람들에게 잘 분배되는 사회를 꿈꾸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거와 이동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새로운 청년 근로자 계층에게 목돈의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미래적으로는 사회적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자녀를 키울 수 있게 배려하며, 근로자에게는‘근로(성실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재교육이 필요하다.


연봉 1억. 자산 100억의 언론보도는 매일 같이 근로자들의 눈을 부시게 한다. 희망을 가지게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임금과 자산은 자신이 근로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바꿔놓지 않는다. 어쩌면 근로자임을 포기하여도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으로 경제생활을 계속 유지하게 마련인 것이, 대한민국 사람의 표준 모델이다. 이들은 신종의 자영업근로자, 소사장근로자인 셈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는 ‘노동의 황금기. 그러한 대한민국을 기대하려면 다음의 생각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작금의 근로자들은 재발견된 빈곤(?)을 회피하도록 각성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다는 사회적인 인식에서부터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 넉넉한 여가생활, 휴가=해외여행, 최고 수준의 복지 등으로 포장된 일부 일자리가 도리어 노동격차를 가져오고 노동 현장의 복지를 상향 평준화하는 데 실패하는 수단이 되곤 한다. 노동의 황금기라더라도 누구에게나 최고의 임금과 일자리를 주는 세상이 아니므로, 그런 왜곡된 풍조를 걷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둘째, 노동의 황금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근로자가 민간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그간 실업률, 고용률 같은 통계적인 자료에 기초해서 청년일자리, 노인일자리, 경력단절여성 등을 위한 정책을 진행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유도는 민간기업에서 고용과 노동환경을 증진하는 것에는 크게 못 미친다.


사회 전반적으로 인간의 노동에는 고급의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고 근로자 누구나 노동에 전념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황금기는 불가촉한 것이 아니다. 그 해법은 근로의 가치를 폭넓게 공유하고 근로를 통한 순기능적인 부가가치의 영속한 향유를 통해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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