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 09 | 17
23.3℃
USD$ 1,335.3 -0.6
EUR€ 1,479.6 -5.4
JPY¥ 921.8 7.4
CNH¥ 187.6 -0.0
  • 공유

  • 인쇄

  • 텍스트 축소
  • 확대
  • url
    복사

[北-中 접경지 탐방②] 푸른 압록강 위에서 바라본 북한

  • 송고 2024.08.10 22:00 | 수정 2024.08.13 11:39
  • EBN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르포] 단둥 명소 압록강단교…한국전쟁 당시 반파, 북중친선·홍색문화

단둥 맞은편 도시 북한 신의주…김일성 상징 '붉은해 모양' 태양아파트

압록강서 바라본 북한마을…푸른 숲·논·밭 외에 사람은 무채색·무표정

249km 달려 고구려 옛도시 통화시 도착…구한말 독립투사 활동 현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다. ⓒ여행사 자료 사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다. ⓒ여행사 자료 사진

국경은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다. 세계·국가·지역 권력이 등장하고 힘을 겨루는 선(line)이다. 최근의 국경은 단절에서 교류의 ‘접경공간(Contact Zone)’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반도·동북아 정세는 위태롭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평온하다. 1334㎞에 걸친 이 두 강은 오랜 세월 이곳의 생명들을 먹여 기르고 있다. 밤이면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네온사인이 가득한 중국, 무채색 북한이 극적으로 대비됐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생명이 피어난다. 6박7일간 2200㎞에 이르는 조중국경 지역을 다녀온 이야기다.[편집자주]


ⓒ구글 지도 캡처

ⓒ구글 지도 캡처

[중국(단둥·통화)=김남희 기자] 다음날 아침 단둥 관광 명소인 압록강단교(斷橋)로 향했다. 압록강단교는 1950년 10월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길목이자 미군 폭격으로 반파된 다리다. 남은 반이라도 남겨 한국전쟁의 ‘북중친선’ 메시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사회주의 국가 간의 공조와 연대를 강조하는 중국 홍색문화(공산당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수십 위안을 내야 단교에 입장할 수 있다. 인구 14억, GDP 세계 2위, G2 국가인 중국은 자본주의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압록강단교는 중국 영역까지 반만 끊어졌다. 한국전쟁 때 북한과 어떻게 공조 했는지를 담은 옛 사진과 글들이 전시돼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단교 끝으로 가 맞은 편 북한을 바라보거나 사진 찍기 바빴다. ‘전쟁의 관광화’란 생각이 떠올랐다.


단둥 압록강단교.ⓒEBN 김남희 기자

단둥 압록강단교.ⓒEBN 김남희 기자

다리 맞은편이 신의주다. 그래서 단둥은 북한과의 무역이나 사업을 추진하려는 한국기업들이나 관련 관광사들에 최적의 요충지다.신의주를 더 가까이 보려면 30분에 90위안(한화 약 3만8000원)인 유람선을 타야 한다.


단교에선 신의주 명물인 태양아파트를 볼 수 있는 데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붉은 색 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보는 북한 건물이라 ‘타이양러우(태양루)’라고 불릴 만큼 유명하다.


유독 한국 관광객들이 이 건물을 오래 바라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건물 상단에 '일심단결'이란 한글이 크게 적혀 있어서다. 이곳을 오기 전 지인이 "북한의 표어와 단어, 슬로건들을 눈여겨보라"고 했었다.


2020년 8월 준공된 태양아파트는 3개동 가운데 건물을 독특하게도 원(圓)모양으로 지었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 태양은 김일성을 상징한다. 신문은 이 건물을 “25층 고층 살림집(아파트)”이라고 소개하며 “과학자, 교육자들을 위한 곳"이라고도 했다.


2020년 8월 준공된 태양아파트는 3개동 가운데 건물을 독특하게도 원(圓)모양으로 지었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 태양은 김일성을 상징한다. 신문은 이 건물을 “25층 고층 살림집(아파트)”이라고 소개하며 “과학자, 교육자들을 위한 곳

2020년 8월 준공된 태양아파트는 3개동 가운데 건물을 독특하게도 원(圓)모양으로 지었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 태양은 김일성을 상징한다. 신문은 이 건물을 “25층 고층 살림집(아파트)”이라고 소개하며 “과학자, 교육자들을 위한 곳"이라고도 했다.ⓒEBN 김남희 기자

압록강을 더 자세히 볼 시간이다. 버스를 타고 진흙길을 달렸다. 비포장도로는 오랜만이다. 일행은 전세보트에 올랐다. 보트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바람도 강물도 차가웠다. 강 건너 북한의 마을과 작은 산, 초소들이 보였다. 거의 50m~100m 앞이 북한 땅이다.


1~2겹으로 처진 철조망 사이로 산과 농작물을 심은 밭과 논을 빼곤 거의 다 무채색이었다. 잿빛 집들과 초소, 잿빛 얼굴의 북한 사람들. 아무리 국경지대라지만 마을 내에서도 철조망이 많았다. 가시철조망은 원래 가축 사육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떠올랐다.


"저기가 북한 여성 수용소 입니다." 누군가 어느 곳을 가리켰다. 을씨년스러운 낡은 건물이 지나갔다. 깊고 푸른 압록강과 녹음이 우거진 산과 언덕은 싱그러웠고 대비적으로 회색빛 존재들이 스쳐갔다. 자전거를 탄 주민과 보초를 선 군인, 작업 중인 사람들. 우리를 향해 웃어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북한 마을과 공장.ⓒEBN 김남희 기자

북한 마을과 공장.ⓒEBN 김남희 기자

북한 마을 전경.ⓒEBN 김남희 기자

북한 마을 전경.ⓒEBN 김남희 기자

압록강은 중국의 15개 국경 가운데 가장 조용한 국경이라고 한다. 그만큼 평화롭다는 얘기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하는 셈이다.


북한 사람에 말을 걸거나 소리치면 안 된다고 했다. 일행들은 말 없이 북측을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 웃음기가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관광객이기 전에 한국인으로서 북녘을 응시했을 것이다.


10여분 지나자 회색 댐이 보였다. 수풍댐이다. 한반도 최대 규모다. 검색해보니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노동자구에 위치해있다. 어마어마하게 큰 수풍댐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댐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지었지만 현재는 북한과 중국이 여기서 나온 전기를 함께 이용 중이다. 큰 댐을 가진 것에 비해 북한의 밤은 칠흑같이 까맸다.


한반도 최대규모 수풍댐. 평안북도 삭주군에 위치해 있다. ⓒEBN 김남희 기자

한반도 최대규모 수풍댐. 평안북도 삭주군에 위치해 있다. ⓒEBN 김남희 기자

압록강에는 크고 작은 다리가 많다. 끊어진 다리도 상당하다. 한국전쟁 때 일본군이 폭파 시킨 채 철수한 흔적이다. 보수 공사 없이 그대로 수십년째 방치됐다.


전세보트의 조선족 직원은 우리들에게 북한 담배와 기념품 같은 북한 돈을 팔았다. 보트 선장은 중국인이었다. 북한을 조망하기 위해 온 우리 한국인과 우리를 상대하는 조선족과 중국인. 북한은 적어도 이 대륙에서 만큼은 강력한 수요가 있는 '컨텐츠'다. 북한이 갖는 고립사회로서의 폐쇄성이 호기심의 대상으로 작동해서일까.


누군가가 말했다. "유엔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마지막 사회이기 때문에 북한은 적어도 동북아 지역, 특히 한국인에만큼은 희귀성 높은 '아이템'"이라고. 그래서 일까. 현지인들이 중국-북한 최대 교역 거점인 단둥이 앞으로 세계적인 동북아 물류 거점이 될 것이라고 호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세보트의 조선족 직원은 우리들에게 북한 담배와 기념품 같은 북한 돈을 팔았다. ⓒEBN 김남희 기자

전세보트의 조선족 직원은 우리들에게 북한 담배와 기념품 같은 북한 돈을 팔았다. ⓒEBN 김남희 기자

보트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단둥을 떠나는 상황에서 말로만 듣던 중국 공안(경찰)이 우리 버스에 다가왔다. 공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신분증 없는 탈북자들이 멀리도 가보지도 못하고 다시 북송되는 이유다. 탈북자 대부분이 도강에 성공해도 공안 검문에 걸려 북송된다. 그 후 탈북인은 어떻게 될까. 체포된 탈북인은 수달간 보위부 조사와 고문을 받고 수용소에 보내져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그나마 여력이 되는 사람은 '빽'이나 돈을 써서 출소하는 식이다.


중국 공안이 여권과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버스 전체를 둘러볼 때 강제 북송을 당한 그 많은 탈북자들이 떠올랐다. 공안은 여권과 신분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직업과 직장명까지 기록했다. 외국인 손님을 대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피부로 느낀 순간, 공안은 우리들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여행하는 지를 물었다고 했다. 단둥엔 북한 식당들이 많다. 하지만 그 식당들은 "한국인(남조선)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단다. 싸늘한 남북 관계 때문이며 공안들은 말은 안 해도 북한에 관심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라는 것을 안다. 일행 중 누가 “(공안에) 담배나 돈 좀 줘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지폐를 꺼냈다.


중국 공안.ⓒ온라인 자료 캡처

중국 공안.ⓒ온라인 자료 캡처

검문이 끝나 버스가 출발했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렀다. 가이드가 말했다. "중국 공안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으니 북측을 티 나게 사진 찍지는 말라"고 했다. 담당 권역 지역에 한국인들이 무슨 일을 할지 걱정되기 때문이었을까.


가이드가 비행기 타기 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공안의 불시 검문이 있을 수 있으니 사진을 찍으면 다른 곳에 백업 해놓고 곧장 지우라고 했었다.


249km를 달려 통화 시에 도착했다. 통화? 중국의 5대 의약품 생산 거점 중 하나이며 와인특산지로도 유명하다.


북중 국경도시라 조선족이 꽤 거주하며, 동시에 만주이기도 해서 만주족도 많다. 북한 자강도 만포 시로 넘어갈 수 있는 검문소와 북한의 만포선과, 혜산만포청년선이 연결되어 있는 만포철교가 있다. 국경도시만이 갖는 매력이 있다.


통화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고구려 첫 도읍 졸본이 있고 구한말 신흥무관학교 등이 통화 지역에 마련됐다. 독립 투사와 조선족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한옥 같은 분위기의 집들이 많이 보였다.


가이드가 졸본을 가리켰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부여왕 대소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쳐 자리 잡고 도읍으로 정한 곳이 졸본이다. 오늘날 중국의 요령성 집안, 길림성의 통화와 자성강 일대에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직접 본 졸본은 고구려의 기마부대만큼이나 광대하고 기백이 넘쳤다.


고구려 첫 도읍지 졸본.ⓒⓒEBN 김남희 기자

고구려 첫 도읍지 졸본.ⓒⓒEBN 김남희 기자

중국 통화시의 고구려 관련 유적지. 참고자료ⓒ 각 기관 자료 캡처

중국 통화시의 고구려 관련 유적지. 참고자료ⓒ 각 기관 자료 캡처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EBN 미래를 보는 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