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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미중 공급망 재편은 한국 반도체 위기다

  • 송고 2023.07.24 06:00 | 수정 2023.07.24 06:24
  • EBN 관리자 외부기고자 ()

박병률 경제칼럼니스트


ⓒ필자

ⓒ필자

중국을 ‘왕따’시키겠다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반도체굴기를 외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기회가 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본의 야망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과 협력해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게 우리의 전략이지만, 미국의 전폭 적인 지지를 받는 일본은 차제에 반도체 강국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1980년대 세계를 석권했던 반도체를 부활시킬 10년 계획을 이미 세웠다는 말까지 들린다.


일본은 최근 외교력을 총동원해 주요국과 반도체 동맹을 맺고 있다. 미국과는 지난해 5월 워싱턴DC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협력 기본원칙’에 합의했고, 이달 초에는 유럽연합(EU)과 반도체분야협력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지난 19일에는 인도와도 반도체분야 협력각서에 서명을 했다. 이를 통해 미국 IBM과 벨기에 IMEC는 일본에 최첨단 반도체 제조기술과 장비를 보급하기로 했고, 인도는 기술소재 공동개발, 인재육성 등에 동참하기로 했다.


개별기업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대만 TSMC는 구마모토에 공장을 짓고 범용반도체를 생산하기로 했다. 도요타, 소니 등 주요민간기업 8곳과는 공동출자를 해 라피더스를 설립하고 2025년까지 2나노 반도체 시제품을 생산한 뒤 2027년에는 대량 생산하기로 했다. 현재 일본의 반도체 기술수준은 구형반도체인 40나노급이지만 2년 만에 최첨단인 2나노 반도체를 생산하고 4년 뒤에는 이를 대량생산 하겠다는 얘기다. 20년간의 격차를 단 2년 만에 따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투자, 일본의 잠재력을 생각할 때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는 반론도 많다.


실제 IBM은 라피더스 지원에 나섰고, 미 최대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은 최대 5000억엔(4조6000억원)을 투자해 히로시마에 10나노 6세대 공정의 차세대 D램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가트너(파운드리 제외)에 따르면 1990년대만 해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 1,2,3위는 NEC,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이었다. 상위 10개 기업으로 확장하면 후지쯔,미시비시, 마쓰시타까지 포함해 6개 기업이 일본 기업이었다.


하지만 2022년 기준으로는 단 한개의 기업도 상위 10개 기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위 삼성전자, 3위 SK하이닉스 등 한국기업이 일본기업의 자리를 꿰찼다. 일본 반도체 기업을 몰락으로 내몬 것은 미국이었다. 1987년 일본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고 인텔이 D램 사업을 접자 미국은 반덤핑 소송으로 맞섰다.


이어 10%였던 미국산 반도체의 점유율을 20%로 높이고 반도체 저가판매를 금지하는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하면서 사실상 일본 반도체 기업을 고사시켰다. 경쟁력을 상실하던 일본 엘피다는 삼성전자와의 치킨게임에서 패하며 2012년 파산했고 도시바는 2017년, 파나소닉은 2019년 반도체에서 철수했다. 이대로라면 2030년 일본 반도체는 소멸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2021년 일본은 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며 반도체 투자를 선언했고 때마침 한국·대만외 새로운 생산거점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전략과 맞아 떨어지면서 빠르게 부활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쟁력이 여전한 소부장 산업이 든든한 ‘믿을맨(믿음직스런 사람)’이 되고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 안보신기술센터(CSET)에 따르면 일본의 반도체 소재와 후공정 분야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장비 부문은 2위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2027년 2나노 반도체 대량생산에 성공한다면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 5월 일본과 정상회담에서 한국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부장 기업 간 공조를 강화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요코하마 시에 첨단 반도체 디바이스 시제품 라인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동맹에도 적극 참여해 반도체 경쟁력을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것이 우리 구상이지만 상황은 녹록찮아 보인다.


일본 투자 러시 속에 일본으로 기술력과 생산력이 되레 유출될 가능성이 크고, 포기해야할 대중국 매몰비용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국 반도체 수출의 절반은 중국을 향한다. 대중관계 악화, 중국경제 부진 속에 최근 대중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서 1년 이상 대중국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투자 해놓은 반도체 공장도 많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투자한 것은 6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향후 이들 공장에서 생산한 반도체의 대미수출이 어려워지고, 첨단장비 반입이 안 될 경우 공장의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중국사업장의 대규모 손실은 반도체 기업들의 자금사정을 악화시켜 향후 투자실탄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벌써부터 SK하이닉스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11조원 짜리 낸드플래시 다롄 공장이 발목을 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새로 산업이 확대되는 2차 전지와 달리 이미 글로벌 선두에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게 미중 공급망 재편은 위기의 조짐이 더 커 보인다. 반도체가 한국경제에 차지하는 막강한 비중을 생각해 볼 때 반도체 경쟁력 상실은 한국경제 전반에 직접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특히 반도체는 한두 해면 완전히 시장이 재편될 수 있는 빠른 사이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등골은 더욱 오싹하다.


당장 분기당 1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남기던 삼성전자가 적자를 우려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하반기 반도체 사이클이 회복된다면 삼성전자의 실적도 개선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기대지만, 공급망 재편 속도를 감안해 볼 때 향후에도 과거와 같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의도를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매우 짧은 시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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