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식의 이행저행] "미스터리쇼핑, 미스터리한 분이 옵니다"

  • 송고 2019.04.19 15:45
  • 수정 2019.04.19 16:31
  •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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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EBN

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EBN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월요일 아침 9시 반쯤 정장 차림의 한 노신사가 영업점에 들어와서 금융상품 가입을 문의한 적이 지난해에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비도 많이 내렸는데 투자해본 적이 없다며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더라구요. 제가 응대하는 사이 영업점의 다른 직원은 사내 메신저로 '미스터리쇼핑'이 떴다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한 금융사 영업점에 근무하는 직원은 자신이 마주쳤던 미스터리쇼핑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평생 금융상품에 투자해본 경험이 없다는 고객이 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방문해 상품설명을 요구하는 상황은 굳이 누구한데 물어보지 않더라도 '미스터리쇼핑'이 확실하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008년 12월부터 펀드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해 미스터리쇼핑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3개월 전인 같은해 9월 15일 글로벌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어 미국 4위 투자은행이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고 이후 국내 펀드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은 원금이 절반 이상 사라지는 피해를 입었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도입된 미스터리쇼핑은 집합투자증권, 파생결합증권, 장외파생상품, 변액보험 등 4개 상품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조사가 이뤄진다.

2015년 5회에 걸쳐 2370개 영업점을 대상으로 진행된 미스터리쇼핑은 2016년 4회·1007개, 2017년 5회·800개, 지난해에는 2회·734개로 조사범위가 다소 감소했다.

금융감독원은 외부 민간 조사업체에 위탁해 미스터리쇼핑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해 하반기 미스터리쇼핑에서 미흡·저조등급을 받은 12개 금융회사는 금감원으로부터 개선계획 제출을 요청받았다.

펀드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한 제도인 만큼 도입 취지는 좋은 제도이나 미스터리쇼핑을 간파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직원은 경쟁사 영업점에서도 놀림감이 되기 일쑤다.

업계 관계자는 "궂은 날 월요일 아침부터 처음 가입하려 한다고 방문하는 고객도 이상하지만 미스터리쇼핑을 수행하는 분들은 대체로 조용히 앉아서 직원의 설명을 경청하기 마련"이라며 "본인의 자산을 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에 투자하겠다면서 별다른 질문도 없이 듣기만 한다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 영업점에서 미스터리쇼핑이 떴다는 경보가 메신저에 뜨면 인근 영업점 직원들은 '미스터리한 고객'을 맞을 준비에 나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90° 인사를 하며 환하게 반겨주기도 하고 어떤 직원은 현관까지 가서 인사하며 자리로 안내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하반기 미스터리쇼핑의 항목별 세부 평가기준을 살펴보면 변액보험의 경우 적합성원칙과 설명의무가 각각 50점이고 미래수익률 보장, 적합한 상품추천 등 비계량항목이 포함됐다.

파생결합증권의 경우 적합성원칙이 40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설명의무(20점), 고령자보호(20점), 녹취의무(10점), 숙려제도 안내(10점)가 평가된다.

어찌보면 비오는 월요일 아침 9시 반에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노신사가 영업점을 방문한 것도 고객이 붐비지 않는 시간에 설명의무, 고령자보호 등 다양한 항목을 평가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영업점 직원들이 '미스터리한 고객'을 쉽게 알아본다는 문제점을 인지한 금융당국은 최근 개선안을 마련하며 대응에 나섰다.

그동안 외부 조사업체 선정시 별도의 위탁기준이 없었으나 앞으로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선정된 역량 있는 업체에 미스터리쇼핑을 맡길 수 있도록 위탁기준을 마련하고 온라인 비대면 금융거래 활성화에 따라 온라인 기반조사도 매년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현행 4개 상품 외에 저축성보험, 실손보험, ISA 등 적합성·설명 의무가 부과되는 상품 위주로 미스터리쇼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올해 중 미스터리쇼핑 강화를 추진하면서 금융업계도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두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미스터리쇼핑에서 누가 웃을지 지켜보는 것도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중요한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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