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배당자제 권고에 커지는 고민

  • 송고 2020.04.07 10:50
  • 수정 2020.04.07 10:52
  • 이윤형 기자 (ybro@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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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폭락에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 대두되는데…"자사주·배당금 늘리지 말라"

은행권 PBR 0.2배로 떨어지면 '잠재부실'로 인식…은행이 위기 주체 될 수도

은행권에 배당을 줄이고 자사주 매입도 자제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가 떨어지면서 국내 금융지주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연합

은행권에 배당을 줄이고 자사주 매입도 자제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가 떨어지면서 국내 금융지주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연합

은행권에 배당을 줄이고 자사주 매입도 자제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가 떨어지면서 국내 금융지주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이 규제 완화 과정에서 확보한 실탄을 기업의 유동성 지원에 쓰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휘청이는 주식시장과 이익성장 둔화에 따른 주가 폭락 예방책으로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에 손을 뗄 수는 없기 때문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금융지주 수장은 주가부양 차원의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손태승 회장을 비롯해 부사장과 전무 등 경영진은 총 3만8164주를 장내 매수했다. 매수금액은 약 3억1780만원에 이른다.

하나금융도 최근 한 달간 경영진 17명이 총 1만7425주(2억5400만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은 주가 하락세가 가팔랐던 지난 18일 5000주를 더 사들였고, 지성규 하나은행장도 같은 날 자사주를 5000주 매입해 총 1만9000주를 보유하게 됐다.

KB금융은 같은 기간 경영진 5명이 3억4600만원어치의 자사주 9260주를 매입했다. 개인고객부문장을 겸임하고 있는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이 1260주, 김성현 KB증권 사장 겸 KB금융 CIB부문장이 5000주를 추가 매입했다.

비교적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이 드물었던 신한금융에서도 경영진 4명이 4272주(1억4000만원어치)를 매입해 주가 방어 의지를 보였다.

대부분 은행 임원직을 겸임하고 있는 금융지주 임원들은 마찬가지로 낙폭이 컸던 은행 자사주도 대거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100조원이 넘는 규모의 유동성 지원 정책을 쏟아내면서 금융주들도 그간의 폭락을 만회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지주 임원들이 주가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사들이는 상황에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일 국내 은행권에 배당을 줄이고 자사주 매입도 자제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윤 원장은 "국내 금융회사도 글로벌 흐름을 참고해 충분한 손실흡수와 자금 공급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 원장이 언급한 해외사례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건전성감독청(PRA)의 사례다. ECB는 오는 10월까지 유로존 19개국 은행에 대해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금지 조처를 내렸다. PRA 역시 대형은행의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성과급 지급 자제 권고령을 결정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은행이 대출 여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국제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씨티그룹(미국),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영국), ABN암로(네덜란드) 등 글로벌 은행이 이런 권고를 받아들였다.

금감원의 권고는 은행이 규제 완화 과정에서 확보한 실탄을 실물지원에 쓰라는 의미도 내포돼있다. 실제 최근 국내 감독기관도 은행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규제를 최대한 풀어주는 분위기다.

윤 원장은 이날 "유동성비율(LCR), 예대율을 포함한 규제에 대해 업계 의견과 해외 감독당국 대응사례를 바탕으로 근본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한시적 완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원화 LCR(유동성커버리지)이나 바젤Ⅲ은 모두 (건전성 규제를 금융회사들에) 유리하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은행권이 규제 완화 과정에서 확보된 자본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으로 소진하지 말고, 실물경제의 유동성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당국의 강력한 권고에도 금융지주들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각종 규제와 불경기로 수익 전망까지 어두운 상황에 코로나19까지 악재가 겹치면서 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주가 방어에 나서지 않는 것은 단순히 주가 하락의 문제만이 아니다. 저평가로 잠재가치가 비교적 높아지기보다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은행권에는 역대 최저금리로 순이자마진을 끌어올릴 수도 없는 상황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실물경제 충격이 금융시스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맞물리면서 은행의 건전성은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이익성장이 둔화된 가운데 최근 급락한 주가를 끌어올릴 방법은 배당성향을 높게 잡는 방법 밖에 없는데, 당국의 권고로 배당성향을 낮출 경우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배 안팎인 4대 금융지주의 기업가치는 더 떨어질 수 있다. PBR은 현재 주가가 기업 자산가치의 몇배인지 나타낸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지주들의 PBR은 0.1배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PBR 0.2배는 사실상 순자산의 80%를 무수익 또는 잠재부실로 본다는 뜻이다. 여기에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방어 노력도 빠진다면 기업가치 하락 전망은 가파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은행이 충분한 충당금과 자본을 가져야 하는데, 국내 은행은 선진국 대비 취약한 수준"이라며 "정책기조의 전환 없이 은행의 희생만을 강요하면 은행이 위기의 주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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