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식의 이행저행] "면책이 중요한게 아니다"

  • 송고 2020.03.12 13:37
  • 수정 2020.03.12 13:38
  •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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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식 금융팀장.

신주식 금융팀장.

"일선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창구직원이 내 책임 아니라고 대출을 막 늘릴 수는 없잖아요. 승인해준 대출이 회수되지 않으면 부실채권으로 남게 되는데 이를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직원이 있을까요?"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회수 가능성을 기준으로 대출심사가 진행되는 만큼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대출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소상공인이 경기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시중은행의 문턱을 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코로나19 관련 여신지원에 대해서는 금융회사 및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적과 리스크관리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골목경기 침체로 인해 늘어나는 대출신청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시중은행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호조세를 이어갔으나 지난해를 정점으로 올해부터는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저금리기조 장기화에 신예대율기준 적용, 부동산 정책 등으로 인해 순이자마진(NIM)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제기돼왔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됨에 따라 골목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20~30분씩 줄서서 대기하는 것이 익숙했던 맛집들은 점심 시간에도 손님을 보기 힘들어졌으며 이런 모습이 한 달을 넘기면서 문닫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두려움도 확산되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위기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까지 통과시키며 적극적인 지원을 천명하고 있다. 추경 이전에 금융당국이 책정한 정책금융만 10조원을 웃돌고 있으며 한국은행은 기존 25조원 규모인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30조원으로 늘려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다.

시중은행들도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맞아 소상공인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독려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점장의 추가대출 전결 권한을 확대해 신속한 자금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전담기구를 잇따라 신설했다.

하지만 신규대출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코로나19로 인한 매출감소가 확인된 6등급 이내의 사업자로 이번 위기만 넘긴다면 피해 회복과 대출상환이 전망되는 경우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 피해로 연체가 발생해 신용등급이 하락한 경우에 대해서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영업점에서 대출심사에 나서는 실무자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중소기업에 비해 '씬파일러(Thin Filer)'일 수밖에 없다. 회계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고 승인한 대출이 실제로 점포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지, 당장 급한 다른 대출금 상환에 쓰이는지 알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지역에서 급증했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해 언제 진정될지 가늠할 수 없다는데 있다. 중소기업도 한 달만 자금이 순환되지 않으면 폐업 위기에 몰리는 상황에서 오늘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이 다음달에도 가게를 운영하고 있을지,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서 연체 없이 대출을 상환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소상공인에 시급한 신규대출은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부 대출로 몰리고 있으며 대출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동산담보대출이 활성화되고 '한국형 페이덱스'가 안착되면 신용등급이 낮은 소상공인도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런 제도들이 정착됐다면 당장 이달에 내야 하는 임대료 고민을 덜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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