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은 녹색' 공식 사라지나

  • 송고 2019.09.20 10:47
  • 수정 2019.09.22 18:05
  • 윤병효 기자 (ybh4016@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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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병, 자율협약 위반"VS"다양성 요구 부합 못해"

ⓒ하이트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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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진로의 뉴트로 제품 '진로'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소주업계에 때아닌 녹색병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진로는 옛날 느낌을 주기 위해 하늘색 병으로 제작됐는데, 이로 인해 '소주는 녹색병으로 통일하자'고 맺은 2009년 업계 자율협약이 깨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하이트진로에 녹색병 통일을 준수하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다양성 시대에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은 시대요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일 소주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 '진로' 출시 이후 최근까지 2000만병 가까이 판매했지만, 이 가운데 약 10%인 200만병의 공병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소주 1병의 원가에서 공병의 비중은 약 30%로 큰 편이다. 일반적으로 공병당 재사용 횟수는 7~9회이다. 하이트진로로서는 진로의 공병을 회수하지 못한 만큼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약 200만병의 진로 공병은 경쟁사인 롯데주류 부지에 쌓여 있다. 소주 공병은 소매점을 통해 수거된 뒤 주류 도매상을 통해 생산업체로 전달되는데, 수거할 때 업체별로 구분이 되지 않다보니 진로 공병이 롯데주류로 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진로 공병이 하늘색이란 점이다. 하늘색 공병은 대다수의 녹색 소주병과 호환이 안되기 때문에 경쟁사에서 이를 재사용할 수 없고, 오직 하이트진로만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녹색병이기 때문에 이 공병을 롯데주류가 회수해도 '처음처럼'에 재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진로는 하늘색이기 때문에 롯데주류가 이를 재사용하지 못하고 부지에 쌓아 놓고 있는 것이다.

하이트진로 측은 규정에 근거해 롯데주류에 공병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12조의 4 ‘빈용기재사용생산자 등의 준수사항’ 별표 5의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 등이 지켜야할 사항' 1-라 항을 보면 "다른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의 제품의 빈용기가 회수된 경우에는 이를 사용하거나 파쇄하지 말고 해당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롯데주류 측은 선별 등으로 인해 추가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합당한 청구를 요구하고 있다.

양사의 때아닌 공병 회수 논란으로 '소주는 녹색병으로 통일 제작해야 한다'는 2009년 업계간 자율협약이 파기 위기에 놓였다.

당시 환경부 주관으로 10개 소주업체는 녹색으로 된 공용화병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환경부는 공용화병 사용으로 빈병 회수기간이 짧아지고, 재사용 횟수도 크게 늘어나며, 신병 투입률 감소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저감돼 당시 기준으로 연간 329억원의 경제적 편익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후로 대부분의 소주업체들은 녹색병을 사용해 왔다. 다만 한라산소주가 투명색 병을 사용하고, 무학소주도 일부 제품에서 투명색 병을 사용했지만, 두 회사 지역 기반이고 판매량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크게 문제화 되진 않았다.

하지만 하늘색 병의 진로 판매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소주 공용화병 논쟁은 본격화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하이트진로가 자율협약을 깼다며 녹색 공용화병을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자원순환연대와 한국환경회의는 "최근 하이트진로가 원칙을 무시한 채 병 색깔과 크기가 다른 소주병을 생산, 판매하면서 공동이용이라는 인프라를 무너뜨렸다"며 "진로소주병을 공동이용 할 수 있도록 표준화 규격화 제품으로 출시하도록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은 시대요구와 맞지 않기 때문에 공용화병 사용을 강제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한 지방소주업체 관계자는 "이번 진로의 판매 열풍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진로는 디자인만 바꾼 제품인데 젊은층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며 "다양성 시대에 녹색병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소주 수출도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녹색병 사용만 고집하기에는 글로벌 경쟁 상황과도 맞지 않다"며 "다양한 디자인을 허용하되 공병 재사용 및 재활용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 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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