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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살롱] DLS사태…'생각하지 않은 죄'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9-08-21 13:37

▲ 대규모 손실을 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판매사(은행 등), 발행사(증권사), 운용사 등을 대상으로 합동검사를 벌인다ⓒ연합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50대 남자가 법정에 섰다. 이름은 아이히만. 당당한 목소리의 그는 자신이 국가 명령에 최선을 다한 공무원일 뿐이었다고 항변했다.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도대체 저의 죄가 무엇인가요. 저는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작한 '열차' 덕분에 우리 조직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그가 고안해 낸 것은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다. 수많은 유태인이 열차에 설치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는 자신은 국가 명령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일 뿐이었다면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의 유죄는 복종에서 나왔으며, 국가의 명령에 따르기 위한 복종"이라 했던 그는 우리에게 그렇게 반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너희가 내 자리에 있었으면 달랐을 것 같아?'

그 질문에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무사유는 죄'라고 답한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비판했다. 독일계 유대인이자 '뉴요커'지 특파원이었던 그는 예루살렘 아이히만 전범 재판을 취재한다. 모두의 추측을 깨고 그녀는 "아이히만은 괴물도 악당도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아이히만은 우리 주위에 너무나 흔한, 개인 영달을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평범한 공무원, 회사원 혹은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라고 저서(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 서술한다.

▲ 독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네이버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도 보다 더 큰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시간은 인간의 기억을 소멸한다. 그 결과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평범성의 오류'를 범한다.

금융권에 불어 닥친 DLS 대란만 봐도 그렇다.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이 수천억원대 원금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져 이 상품 가입자들은 패닉 상태다. 일부는 만기가 다가오는데 최악의 경우 원금의 완전손실까지도 예상된다니 '제2의 키코(KIKO) 사태'가 될까 우려된다.

파생금융상품 투자손실 책임은 원칙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있겠지만 금감원은 은행과 직원들이 판매 과정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들여다볼 계획이다. 손실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낙관적 정보만을 제공했는지도 가려낸다 했다.

파생금융상품 손실 대란은 반복의 흑역사다. 건건이 금감원이 검사반으로 나섰고, 금융사들은 중징계를 받았다. 2008년 발생한 키코 사태가 대표적이다. 사태 본질은 이번에 문제된 DLF와 같다. 수익률 상단은 정해져 있지만, 손실률은 무한대라는 것이 같다. DLF가 국채 금리변동에 기초한 것이라면, 키코는 환율 변동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파생상품 손실도 있다. 우리은행이 2004년~2007년 판매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CDO(부채담보부채권)과 CDS(신용스왑계약)은 1조원대의 손실을 냈다. 당시 일부 은행 직원들은 금융 지식이 적은 취약층을 상대로 파생상품 가입을 권유해 논란을 빚었다. 2009년 관련 임직원은 징계를 받았다.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도 투자금융의 실패작이다. 2013년 동양그룹이 동양시멘트 등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동양증권(옛 유안타증권)을 통해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했다.

동양 CP에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은 상당한 손해(약 7000억원 이상)를 봤다. 여기 일련의 사태를 검사한 금감원은 "일련의 파생상품 불완전 판매 사태는 원금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은행이 판매하기에는 위험 수준이 높은 경우였다"며 "이를 알고 투자를 권유했다면 배임이, 모르고 판매했다면 과실이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 김남희 금융증권부 기자ⓒEBN
이번 DLS 대란은 은행인의 사유방식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동안에는 은행이 고위험의 상품을 걸러줄 것이란 믿음이 시장에 작용했다.

만약 금감원 조사 결과 은행의 시스템적인 조급함이 드러난다면 은행은 '소비자 입장에서 사유하지 않은 죄'가 있는 셈이다.

한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깊이 생각하지 못함'이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큰 대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나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깊고 넓은 생각, 상대방 입장을 고려한 사유는 높은 수준의 두뇌활동이다. 개별 인간이 행하기에 벅찬 일일 수 있는데, 행하기 벅찬 이유는 금융인을 둘러싼 환경이 조직 논리, 영업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실적 목표와 도덕적 딜레마가 씨름하는 현실에서도 기자는 높은 수준에서 사유하는 금융인이 되길 기대한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이라서다.

그녀는 인간에게 주어진 그 의무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치즘 혹은 전체주의가 발생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같은 맥락에서 금융인의 무사유가 우리사회 신뢰자본과 국민 자산을 훼손할까 걱정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