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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식의 이행저행] "말이 씨가 된다"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9-08-08 18:37

▲ 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전양상을 보인데 이어 일본의 수출규제를 두고 우리나라와의 갈등도 단기간에 수습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면서 금융당국이 잇달아 대책회의에 나서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최종구 금융위원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당국 수장들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피해가 우려되는 소재·부품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는 한편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예의주시하며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국내 금융시장의 펀더멘탈이 탄탄하고 외화보유고도 4000억달러를 넘기며 세계 9위에 오른 만큼 일본의 경제보복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때 한국 기업 신용장에 대한 일본계 은행의 보증을 제한할 경우 한국 경제가 받을 충격이 크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를 국내 언론에서 인용하기도 했으나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실효성도 없고 금융시스템 전반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반박했다.

금융당국은 국내 은행이 개설하는 신용장에 일본계 은행의 보증을 제공받는 비중은 올해 상반기 중 0.1% 수준에 그쳤으며 일본계 은행보다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이 더 높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와 함께 금융위원회는 "검증되지 않은 일부 인사의 주관적 평가나 판단을 보도함에 있어 시장의 불필요한 불안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주길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국내 금융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하고 국내 금융시장의 펀더멘탈도 IMF를 겪었던 20년 전에 비해 상당히 탄탄하지만 심리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금융시장인 만큼 불필요한 불안심리 조성은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1950선이 무너지고 환율은 1215.3원을 기록하며 '블랙먼데이'로 불렸던 지난 5일 투심이 위축된 것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우리나라 환율도 영향을 받은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가 하락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일시에 대규모의 외국인자금이 이탈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우려도 물론 반영된 부분이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라는 것이 시장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다시 IMF라는 단어가 거론되고 있다. 지난 1997년 시작된 IMF는 국내 대기업집단 및 금융권의 붕괴와 함께 금모으기 운동 등 국민들의 자발적인 경제살리기 운동이 이슈가 됐다.

하지만 지금 와서 IMF 당시를 되돌아보면 부족한 외환보유고를 채우기 위해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외국자본에 내줬으며 당시 경제위기라는 공포에 질린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IMF는 가혹한 조건과 요구를 내세우며 우리나라 경제를 유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 국민들마저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냉철한 분석과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 당시 IMF를 겪고 난 이후 얻은 교훈이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미·중 무역전쟁을 이유로 '퍼펙트 스톰'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20여년전 IMF에 대한 공포를 다시 부각시키는 것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아닐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이전보다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낮췄으며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3개월만에 크게 낮췄다. 여기에 일본의 경제보복과 미·중 무역전쟁 및 환율전쟁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2% 아래로 떨어트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보다 50년은 뒤처져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모 정치인의 주장과 달리 삼성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추진 중이며 일각에서는 50년이 아니라 5~6개월 정도면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핵심소재들을 일본이 아닌 한국 소재·부품 기업에서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집에 불이 났을때 이젠 망했다고 큰소리로 울기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두고 IMF를 거론하는 것은 20년 전에도 집에 불이 나서 크게 망한 적 있지 않냐며 난리를 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는 금융시장에서 "이젠 망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불필요한 불안심리는 커지기 마련이다. 심리에 민감한 금융시장에서 '말이 씨가 되는' 크고 작은 사례는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 국가들은 고도의 성장기를 지나왔거나 베트남과 같은 경우는 지나가는 과정에 있으며 먼저 성장가도를 달려왔던 우리나라는 이제 저성장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둔화되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분투가 미국과 중국에서, 유럽과 영국에서, 한국과 일본에서 잇달아 갈등을 일으키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준비해야할 것인지 차분히 되돌아보고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