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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중심 구조조정 추진하는 정부 "민심 외면할 수 있나"

채권단 중심 구조조정은 근본적 산업 체질개선에 한계…현상유지에 안주 비판도
지역경제 붕괴, 대규모 실직 우려 큰 기간산업 구조조정도 시장에 맡기긴 힘들어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9-07-30 13:50

▲ 지난 26일 경남 김해 소재 디에이치피이엔지를 방문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 가운데)이 생산시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금융위원회

산업은행에 이어 금융당국도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뤄져왔던 산업 구조조정을 민간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살려야만 하는 기간산업의 경우 대규모 실직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에서 지역경제와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향에만 초점을 맞춰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6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구조 혁신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현재의 주력산업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선진화된 자본시장 중심의 기업구조조정 시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그간 IMF 등을 거치면서 형성된 채권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은 시장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신속히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성과가 있었으나 근본적인 사업 체질개선은 미흡했으며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현상유지에 안주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자와 기업가 사이에 생긴 불신의 벽으로 채권은행은 자금회수에만 주력하고 기업가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에는 기간산업·대기업 위주 구조조정보다 중소기업, 하청업체 등 산업생태계 차원의 구조조정이 더욱 중요해지고 기업의 시장성 자금조달 의존도도 높아지면서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은 자본시장 중심의 기업구조조정 시장을 만들기 위해 모험자본 역할 강화, 사업구조조정 역량 개발, 투자자·기업주간 상호신뢰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 주요산업의 기업구조조정을 이끌어온 산업은행도 전담조직 분사와 함께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풍토 정착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KDB인베스트먼트 출범과 함께 초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대현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국책은행 중심으로 추진됐던 구조조정이 민간·시장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대현 사장은 "시장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 기업구조조정이 사회적 구조조정으로 진행됨에 따라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늘어나는데 사회적 구조조정은 시장 중심 구조조정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기업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기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것은 사회적 안전망 등 다른 장치가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따로 떼어내 시장논리에 맞게 해보자는 취지로 출범한 KDB인베스트는 시장 중심의 중대형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과 국책은행이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풍토 정착을 천명하면서 향후 정부의 방향성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부실화로 수만명의 실직자가 우려되는 기간산업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이에 대한 즉각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시장 중심이라는 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산업은행이 채권단으로 참여하며 기업구조조정을 진행한 기업들은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등 정부 차원에서 성공적인 회생을 이뤄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으며 조선산업의 경우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져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다.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구조 혁신방향 토론회'에 참석한 최종구 위원장은 토론회에 앞서 경남 김해에 위치한 디에이치피이엔지를 방문해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매각후재임대(S&LB, Sales & Lease Back) 프로그램을 활용한 회생 모범사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토론회에서 강조한 자본시장 중심의 기업구조조정은 디에이치피이엔지와 같은 중소 조선·자동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다"며 "글로벌 경기침체로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 기업에 시장 주도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면 회생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시 발생해선 안되겠지만 대우조선과 같은 지역경제와 일자리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부실화될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며 "이와 같은 경우에는 이전과 같이 국책은행이 채권단으로 개입해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과 사회적 구조조정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5일 열린 대우조선 매각저지 결의대회 모습.ⓒ대우조선지회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모든 부실화된 기업에 대해 이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금융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우건설을 시작으로 KDB인베스트에 출자사들을 이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산업은행도 이와 같은 한계에 대해서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산업은행이 100% 보통주를 출자해 출범한 KDB인베스트는 장기적으로는 산업은행의 지분을 전량 매각해 민간기업으로서 시장·민간 중심의 구조조정 풍토를 정착시킨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대현 사장을 포함해 13명의 임직원으로 시작한 KDB인베스트가 수만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조선소와 같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회사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관련법에 따라 KDB인베스트는 형제사인 KDB생명의 지분을 많이 보유할 수 없고 다른 출자사의 경우도 이관하기 위해서는 세금 등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부실화된 기업을 정부 차원에서 회생시켜야 하는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면 산업은행을 거치지 않고 바로 KDB인베스트가 채권단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 되겠지만 현실적인 부분들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기간산업이 부실화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몇년간 조선업이 위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부산의 최대기업은 한진중공업이며, 거제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통영은 성동조선해양이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상황이다. 이들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인력감축 문제가 불거질 경우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인력감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힘들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에 지원유세를 온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도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감축을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일 만큼 지역 기간산업 종사자들이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대우조선 합병 추진으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거제지역 주민들은 합병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지역 정치인들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재업체와 달리 대형 기간산업의 경영상태는 지역경제 뿐 아니라 선거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들 기업에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적용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기업구조조정을 KDB인베스트에 전담시키고 혁신성장 지원에 주력하겠다는 산업은행의 목표가 실현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