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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금융살롱] 메리츠금융의 묘한 인사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9-03-14 10:46

▲ 이 시대의 '메리츠'는 어떤 금융사, 어떤 금융인인가. 메리츠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가. 브랜드는 기업의 인격까지 담아내는 그릇이고 대중의 언어로 빚어낸다. 그 그릇 상태에 따라 메리츠와 고객 간의 관계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다. ⓒEBN

메리츠금융지주가 묘한 선택을 했다. 생업으로는 금융을 처음 접하는 한정원이라는 '용병'에게 브랜드전략부문장(상무)을 맡긴다고 했다. 한정원 상무가 사회인으로서 활동했던 무대는 언론사와 청와대 정무수석실이다. 이런 인사를 택한 메리츠는 어떤 회사인가. 인물 발탁에는 제각각 그럴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으려니 하지만 메리츠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온 기자로서는 이번 조합이 의아하다.

메리츠는 얄밉게도 '시중의 돈을 잡아 채는' 재주가 특출 난 금융사이다. 돈이 들어오는 길목을 발견해내는 본능은 물론, 시장의 돈 버는 재주꾼들을 쓸어 모으는 용병술도 가졌다. 물론 높은 성과급과 같은 동기 부여책이 그 이유다. 일터로서의 매력도가 높은 것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모든 일꾼들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 경영진들은 적절히 구성원들에게 비전 제시로 동기부여를, 다시 태어나는 증권사와 보험사로서의 꿈을 조직에 심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것을 통솔해나가는 관리자, 임원들의 열정에도 기름을 부었을 것이고, 당근과 채찍을 제시하며 게으른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도록 끊임없이 공을 들였을 것이다.

사실 보험업이라는 게임은 지난 50년간 '변화구'가 용인되지 않은 지루한 경기로 전개돼왔다. 보험업계는 공을 회전시켜 타자를 현혹하는 식의 변화무쌍한 경영술을 '불온하게' 여겼다.

새롭고 낯선 시도를 두고 보험업계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것은 보험을 모르는 비전문가나 하는 것'이라고 폄하했고 '보험을 오래한 사람이 전문적'이라고 경계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김용범 부회장이 메리츠화재 경영을 지휘하면서 특히 손해보험산업의 경기 흐름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직구 일변도에서 해방되기 시작했다. 메리츠화재는 빠른 공과 낙차 큰 커브를 비롯한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손보사 경쟁을 더욱 풍성하게 했고 그제서야 수면 아래 가려졌던 회사별 변별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는 양상은 드라마틱했지만 어느 손보사에서는 죽어가는 '곡소리'가 났다.

메리츠금융의 쌍두마차, 메리츠증권과 화재가 시장 주도권을 꽃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메리츠만의 '얄짤 없는 정신' 때문이다. 메리츠는 뛰어난 기량으로 돈을 벌어오는 행동주의를 중시했다. 새로운 시장을 탐색해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전문성과 데이터를 검증, 또 검증했다.

경쟁사의 온정주의 문화와는 근본부터 달랐던 셈이다. 나쁘게 말해 약삭빠른 보부상에 가까웠고 좋게 말해선 부지런하게 시장을 연구했고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괜히 헛발질 말고, 될 시장에서 놀아라'는 김용범 부회장의 지론 영향일까. 메리츠인들은 경쟁이 없는 시장을 창출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다.

기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데이터 전문가의 역발상을 통해 마치 수맥 찾기처럼 새 시장을 발견해냈다는 점이다. 기존 통계가 보지 못한 빈 곳을 찾아내 리스크 감내폭을 늘렸던 것.(통계적 측면에서 다양성을 확보했단 이야기다).

중요치 않아 보이는 '짜투리'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아 유용한 데이터로 재가공했다고 볼 수 있다. 타사보다 보험 가입 문턱이 낮아진 메리츠에는 무뚝뚝한 경쟁사에 질린 고객이 몰렸다.

여기에다 높은 자산운용이익률까지 더해져 종합적인 경영 기술로 '치고 나가는' 특급 선수로 거듭나고 있는 게 지금의 메리츠의 모습이다. 지난해 몇 차례, 지난 2월 장기 보장성 보험에서 메리츠화재는 만년1위 삼성화재를 눌렀고 메리츠종금증권은 대형 투자금융으로서 거듭나고 있다.

메리츠화재 한 임원은 "메리츠화재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지만, 손보업계 1위를 만드는 기적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이직했다"고 했다. 경쟁 우위가 고착화된 업종에서 순위를 뒤집는 것도 대단하지만, 지루한 패턴의 보험사 직원들에게 새로운 꿈을 안겼다는 게 메리츠의 가장 큰 기적일 것이다.

▲ 금융증권부 김남희 기자ⓒEBN
'매직'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메리츠는 대충 일해선 버티지 못하는 프로들의 집합이다. 내부적으로는 메리츠가 지향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메리츠가 주는 일종의 '수련 과정'을 견뎌내고 성공과 변화를 맛본 사람은 메리츠의 추종자가 되는 것 같다. 아직은 메리츠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을 달리지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기업인 것만은 확실하다. 포장지값, 내부 경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은 대한민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런 메리츠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청와대 행정관 출신 임원을 발탁했다. 인사 배경을 둘러싸고 소문이 파다하다. 가장 자본주의적 기업도 채용청탁에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와 한국 사회에서 '퀀텀 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자조석인 얘기도 들린다.

한정원 상무가 '갑툭튀' 인물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가 지나온 궤적과 지금의 메리츠 임원자리에 이렇다할 맥락이 없어서다. "(기업엔) 인재가 전부입니다. 임원회의에서 임원들에게 촉구한 유일한 것도 인재 등용이었습니다." 김용범 부회장의 인재론이다.

백번 양보해 이런 맥락 없는 인사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해석해볼까 한다. 한 신임 상무가 방송기자 경험을 살려 매스미디어(대중매체)적 관점으로 메리츠금융의 경영철학을 대중의 언어로 제시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또 국회·정당과 소통했던 정무수석실 경험을 살려 실리지향적이고 자본주의 최첨단에 서 있는 메리츠금융에 '주위를 살피는' 정무적 감각까지 심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정무 감각도 메리츠의 사업철학과 성장 속도와 맞물릴 때 효과를 보이겠지만 말이다.

기업 브랜드전략의 본질은 '모성'이다. 아이를 낳아 길러 제 역할을 하는 성인으로 키워내는 일처럼 브랜드도 낳아 길러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시대의 소비자가 어떤 금융을 원할까에 대한 호기심과 통찰 없이는 '메리츠'라는 금융의 캐릭터를 구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의 '메리츠'는 어떤 금융사, 어떤 금융인인가. 메리츠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가. 브랜드는 기업의 인격까지 담아내는 그릇이고 대중의 언어로 빚어낸다. 그 그릇 상태에 따라 메리츠와 고객 간의 관계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