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시간 : 2019년 03월 24일 09:39
EBN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뉴스스탠드
실시간 News

[기자수첩] 좌충우돌 금융정책

강승혁 기자 (kang0623@ebn.co.kr)

등록 : 2019-03-13 16:29

▲ 강승혁 기자/금융팀
금융정책의 나이브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던져보고 아니면 도로 거두는 그림이 너무 자주 보이다보니 요리사가 음식 간 보는 일을 손님들한테 맡기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검토"라며 운을 띄웠다가 국민들 반발이 커지자 당정청협의회를 열고 "소득공제율과 공제 한도는 현행 제도를 원칙적으로 유지한다"며 제도를 3년 연장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도대체 말을 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정책당국의 스탠스다.

홍남기 부총리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한다고 한 적 없다"며 한 발 물러서고, 당국 관계자는 "소득공제 축소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하며 사실상 '무입장'으로 선회했다. 축소된 것은 자산관리에 바쁜 국민들의 정서적 여유일 따름이다.

여기에 '제로페이'에 소득공제율 40%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팩트가 함께 알려졌다. 제로페이는 올 1월 기준 국내 개인카드 결제금액의 0.0003%에 불과하다. 정부가 카드혜택을 줄이고 존재감 없는 제로페이 활성화를 억지춘향식으로 시킨다는 비판이 커진 것은 자연스럽다.

이처럼 의사결정자 말이 조변석개하듯 바뀌는 것은 물론 내놓은 정책에 책임을 지는 태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최근 카드수수료 체계를 개편하며 500억원 이하 매출을 올리는 카드 가맹점에게도 혜택을 줬다. 그리고 카드사가 5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대형가맹점의 수수료를 높여 '역진성'을 해소하라는 게 금융당국의 주문이었다.

본지는 지난달 20일 "카드사-대형가맹점 협상에 손놓은 정부…이해관계 조정 '뒷짐'"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원인을 제공한 정부는 정작 시장내 이해관계 조정에서 뒷짐을 지고 있다"며 "대형가맹점 수수료 조정에 사활이 걸린 카드사에 움직임에 중재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서 신용카드 업자에게 부당하게 낮은 가맹점수수료율을 정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만큼 대형가맹점의 처벌이 가능하다고 경고하면서도 "부당하게 낮은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는 판단이 필요하다"는 '안전한 입장'을 냈다.

대형가맹점이 가맹점 해지라는 강수를 둘 수 있다는 우려에도 "가맹점 계약은 가맹점과 카드사의 자유의사로 하는 것으로 개입할 근거는 없다"는 게 금융위 입장이었다.

금융당국의 입장이 애매하니 예상대로인 결과가 나왔다. 카드사는 연간 카드 매출액만 수조원에 달하는 대형가맹점인 현대차와의 협상에서 완패를 했다. 카드사들은 현대차에 1.8%인 카드수수료를 1.9%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현대차가 역시나 '계약해지'라는 강수를 들고 나오면서 모든 카드사가 현대차의 조정안을 따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달 7일 카드사와 현대자동차 간 수수료 갈등에 대해 "당국이 뒷짐만 지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체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의견 충돌"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뒷짐을 진 게 맞아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카드사들이 '역진성 해소'라는 명분을 쥐고서도 이처럼 무력하게 당할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이다. 최 위원장이 이번 협상 전까지 내놓은 입장은 "최대한 양 당사자 간에 협의를 통해서 적정한 선이 찾아지기를 기대한다"고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카드사가 알아서 잘 하라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카드사들이 금융당국의 가이드를 지키기 위해 현대·기아차에 맞서고 있는 그 순간, 금융당국은 겉으로는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면서도 물밑으로는 카드사에게 현 수준에서의 원활한 협상을 종용했다"며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나라의 민낯이 이런 모습이었다니 촛불혁명의 일원으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런 갈등이 소비자들의 피해로 전가된다는 것이 불편한 사실이다. 500억 이하 모든 가맹점에게 수수료를 덜 받고, 500억 이상 가맹점에서도 수수료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면 카드사의 경영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카드의 각종 부가서비스는 없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미 통신비, 카페할인 카드는 하나둘씩 사라지는 중이다.

금융위도 카드사의 부가서비스 수준이 너무 컸었다며 줄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야 카드수수료 개편안에 따른 카드사 출혈이 상쇄돼서다. 금융위는 "포인트, 할인, 무이자할부 등 카드회원이 누리는 부가서비스는 회원 연회비의 7배 이상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지금 정부의 금융정책은 선의라는 대의명분을 강조하며 국민을 위한 것이라 하면서도 또 국민을 위하지 않는 모습이 여실하다. 일방성을 띈 정책이 갈등과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의 정책은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입장 고려는 물론 파급효과에 대한 정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설익은 정책에 피해보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