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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의 증권랜드] 내가 망친 회사, 나를 망친 회사

박소희 기자 (shpark@ebn.co.kr)

등록 : 2018-06-08 16:59

▲ EBN 금융증권부 증권팀 박소희 기자.
이직도 어려웠다. 실수 한번으로 공중분해된 회사에서 퇴사한 후 삼성 계열 증권사로 옮기기까지는 운이 좋았다. 주위에서는 잘 풀렸다고도 했다. 삼성에서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전 회사에서 있었던 무용담으로 신세한탄을 하다보면 금방 친해졌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좋아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증권맨이었다. 증권맨이 사기꾼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와 삼성증권을 거치다보니 회사가 내 인생을 망쳤는지, 내가 회사를 망쳤는지 헷갈릴 정도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 금요일 아침. 여느 금요일처럼 회사는 나른했다. 담배를 피러 나가서 어플을 켰다. 413억2683만원이 찍혀있다. 다시 봐도 413억2683만원이다. 숨을 죽이고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뉴스에서 은행 실수로 잔액 끝에 0이 추가로 입력됐는데 고객이 양심적으로 이를 신고했다는 사연을 본적이 있다. 어쩌다가 내 계좌에만 들어온 주식인 줄 알았고 조용히 처리하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런데 당연히 그럴리는 없다. 몇몇 친한 동료들한테 연락이 왔다. 확인했냐고. 빨리 처리하고 새 삶을 살자는 농담이 오고갔고 그 짧은 시간에 사고 싶은 것, 버킷리스트, 인생 계획과 꿈에 대해 주고 받으면서 괜히 들떴고 출처없는 용기가 솟구쳤다.

100주만 먼저 팔아봤다. 팔렸다. 어차피 내가 원래 보유하고 있던 물량의 일부니까 상관없다. 잘못 입고된 주식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고 회사 건물 밖에 있어서 배당 사고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던 걸로 하면된다. 계속 전화와 문자, 톡을 하다보니 회사에서 온 연락이나 공지는 건성으로 본거다. 나는 그냥 내가 가지고 있던 주식을 그냥 매매 한거다. 나쁜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정황은 성립된다.

좀 더 팔아봤다. 팔렸다. 아까보다 가격이 많이 내려간 걸 보니 물량이 많이 나오고 있나보다. 나 혼자만 팔고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안심이 됐다. 사실 내 돈이 안될 줄은 알고 있었다. 혹시 큰 일을 저지른게 되더라도 우리회사 시스템이 막아줄 것이다.

나 포함해서 21명이다. 나는 나름 이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50줄을 바라보고 있지만 입사한지 몇년 안된 R.A도 있다고 한다. 계약직도 아닌 리서치센터 젊은이가 그랬다는 데에 혀를 차는 사람이 많다. 팔리니까 팔았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부임한지 얼마 안된 대표가 최전방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 회사에 압수수색이 들어오고 실수로 주식을 잘못 입력한 직원은 충격과 죄책감에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나마 실감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회사 차원의 피해자 보상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감독과 관리, 시스템 마련이 업무인 금융당국과 증권 유관기관은 보완하겠다, 앞으로 재발을 철저히 막겠다고 말한다. 대표의 발품과 빠른 수습이 높게 평가 받으면서 일은 생각보다 빨리 진화됐고 사태의 최정점이자 근원지는 21명으로 좁혀지는 듯 하다.

검찰 조사를 받기도 전에 우리가 회사에 수억원을 물어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누구는 이혼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날 일로 10년여만에 회사 배당 시스템은 싹 바뀌고 유관기관의 점검 시스템도 새로 생겼다. 비상시 매뉴얼도 새로 마련됐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결점이 보완됐고 내 삶은 무너졌다. 주식을 판 날, 후진 시스템에서 회사가 날 보호해 줄 거란 기대는 착각이었다.

*글의 내용은 사실과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