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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까톡] 삼바를 둘러싼 전지적 참견 시점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8-06-03 00:16

▲ 경제부 김남희 기자ⓒEBN
기업 재무팀에서 일하지 않는 이도,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회계는 기업의 언어'라는 말 정도는 압니다. 회계는 기업이 경영 내용과 결과를 평가받도록 하는 근거 자료가 되고 경영자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회계가 실은 정치와 밀접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라는 책은 '세계 역사는 회계로 세워졌다'는 주장을 제시하며, 흥미로운 사례들을 내놓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고대 로마제국입니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회계 장부의 중요성을 간파해 제국의 경영을 위해 국고를 관리했다고 합니다.

책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국고 회계가 담긴 <업적록>을 로마 방방곡곡에 게시했는데, 기록에는 제국의 군대가 쓴 비용이 얼마이며, 이중 황제가 지불한 돈은 얼마인지, 해당 마을과 귀족들이 투자한 돈은 얼마인지가 기록돼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회계를 제국의 관리 도구이자, 선전 도구(프로파간다)로 활용하며 대중과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애썼다고 합니다. 회계 장부를 워낙 중요하게 생각해, 황제가 장부를 손수 기록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탈리아 상업도시 피렌체를 350년 통치한 메디치는 좋게 말해 은행업, 나쁘게 말해 사채업으로 부를 일군 가문입니다. 돈의 드나듦을 기록한 회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메디치 가문은 '주산 학교'로 지역 학교의 절반을 채웁니다. 부채 뿐이었던 왕실 회계장부 때문에 루이 16세는 국가 부실경영을 이유로 단두대로 보내지기도 합니다.

산업혁명 후 많은 기업이 배출됐지만 회계 빈틈이 있었던 시대였던 만큼 록펠러와 같은 악덕 자본가를 만들기도 하지요. 이후로는 기업의 회계 장부를 감시하고, 재무적 진실을 입증하는 공인회계사가 근대 자본주의의 공식 심판관으로 등극하게 되지요. 회계는 인류 역사와 기업 운명의 갈림길에서 늘 함께 했습니다.

‘삼바’라는 유행어를 낳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은 연결과 공동지배 및 파생상품이 결합된 최첨단의 고급회계 영역입니다. 논란을 관망하던 차에 저는 대우그룹 분식회계 조사에 관여했던 재무전문가를 만났습니다. 1999년 공중 분해된 (주)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5개 계열사에 걸쳐 무려 50조 원에 달했다고 하네요. 그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브리핑만 10시간이 넘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분식회계를 자행하는 기업의 특성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특성으로 그는 경영진이 뜬금없이 터뜨리는 ‘실적 확대 의지’, 맥락 없는 '말의 성찬(盛饌)'을 꼽았습니다. 예컨대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성과에만 천착한다든지, 핵심 경쟁력 키우기보다 ‘수익성 턴어라운드의 원년’만 강조하는 천수답형 경영행태가 분식회계의 조짐이자 시그널이라고 합니다. 경영진의 관리회계와 공시용 재무회계 간의 정보 격차가 큰 기업도 분식회계가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분식회계는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지능형 범죄라고 했습니다. 재무팀 실무자 혼자 분식을 조작할리는 만무하고, 뒤를 봐주는 누군가가 있거나 윗선의 강력한 지시가 있는 등 반드시 역학 관계가 얽힌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식의 금감원의 행태에 시장의 비판이 거셉니다. 이에 대해 이 전문가는 ‘삼바의 상장 당시 허술했던 시스템을 늦게라도 당국이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하면 안 되는 것인지 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언제든지 논쟁하고 검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한다면서요. 의심이 되는 사안이 있으면 재검토 하는 게 사회 정의를 위해 맞지 않느냐고 또 반문했습니다.

대화가 끝나갈 즈음 그는 제게 말했습니다. “‘뺑끼’친다 할 때 ‘뺑끼’라는 단어 뜻 아세요? 페인트칠이라고 하죠. 거짓말과 속임수를 뜻해요. 그게 바로 분식(粉飾)입니다. 왜 기업은 속임수를 쓸까요? 기업 문제와 한계를 숨기고 반드시 이뤄야하는 목표가 있는 경우 아닐까요. 그리고 그게 월급쟁이 임직원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요. 분식회계 감리는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그 기업 구조와 이해관계, 처해진 환경에 대한 관찰이죠. 분식회계 감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찾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 기업이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뽐내고 싶어 했는지는 찾아낼 수는 있다고 봅니다. 마치 탐정 일과 같죠.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이 분식회계 회색지대를 찾는 데 그 좋은 머리를 쓴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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