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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무 택한 '이웃집 아저씨'…재벌이라 더 빛났다

권영석 기자 (yskwon@ebn.co.kr)

등록 : 2018-05-23 06:00

구본무 LG 그룹회장의 유해가 경기 곤지암의 '화담숲' 인근에 묻혔다.

22일 오전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구 회장의 발인이 엄수됐다. 유족들과 LG그룹 임원, 범 LG가 인사, 재계 인사 100여명이 차분히 지켜봤다. 이후 가족들만 따로 장지로 이동해 비공개로 장례를 치뤘다.

구 회장은 매장, 납골당 봉안, 산골 등 여러 장례방법 중 '수목장'의 형태로 자연으로 돌아갔다. 재벌 총수로는 수목장 장례를 치른 첫 번째 사례다.

앞으로도 나올까 말까하는 선택이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은다. 한국 경제를 이끈 재계 4위 그룹 총수의 장례식이라고 하기엔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살아 생전 소탈과 검소의 철학을 품고 살아온 구 회장은 마지막까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택하면서 그는 진정한 '재계의 큰 별'이 됐다.

비공개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유가족들의 뜻에도 불구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한 조문객은 빈소 밖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를 목 놓아 불렀고, 누구는 LG 쌍둥이 빌딩 표지석 앞에 국화꽃과 애도의 편지 한 장을 두고 갔다한다.

최근 재계에서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처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총수 일가의 총체적 부패와 오너 갑질로 얼룩진 지금, 구 회장이 대중에게 남긴 메세지는 실로 크다고 본다.

미담이든 구설이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그의 미담과 선행은 향후 LG그룹 전체의 성장과 미래를 결정 짓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소탈했던 구 회장은 평소 공식적인 행사나 출장을 다닐 때 수행원 한 명만 대동했고 휴일 개인적인 용무를 볼 때는 아예 혼자 다녔다 한다.

또 회장 취임 초 그룹 임직원들을 시상하는 행사에 직원들과 똑같은 행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임직원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평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죽음이 두려운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때문에 구 회장의 수목장은 재계에 여러 의미를 남긴다.

수목장은 자기 자신이 죽음이 되면서 삶이 되는 장법이며, 대지로 온전히 돌아가는 장법이다. 나무와 하나가 돼 하늘을 향한다는 인식의 기저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우주관도 깔려있다.

그동안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법'만 생각했지, '잘 죽는 법'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며 살았다. 구 회장은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뇌종양 수술을 한 차례 받기는 했지만, 와병 중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받지 않았다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지만, 스스로 평안하고 아름답게 자기 삶을 정리한 구 회장의 별세에서 당신은 진정 무엇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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