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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금융살롱] 금감원의 터와 운명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8-04-17 15:44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EBN


1899년 설립된 우리은행이 120년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비결은 터가 좋아서란 얘기가 들린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은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정광필 씨 집터로 알려진다.

이 집안에서만 12명의 정승이 배출된 명당 중의 명당이다. 금융기관이 명당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며 풍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같은 터의 길흉을 놓고 금융감독원이 때 아닌 논란에 휩싸였다. 반년도 안돼 두 명의 금감원장이 불명예 퇴진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최흥식 전 원장은 지난해 9월 11일 취임한 뒤 6개월만인 지난달 12일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여 중도 사임했다. 김기식 원장도 17일 취임 14일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올해에만 두 명의 수장을 잃은 금감원은 돌발악재를 만나 휘청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한민국 금융감독기구인 금감원이 만신창이가 됐다”며 “금감원을 개혁하겠다며 임명된 수장들이 오히려 금감원의 권위와 신뢰를 더 실추시켜 직원 사기는 말 그대로 바닥이며 조직의 존립기반마저 소멸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월스트리트라고 말하는 여의도 증권가(街). 여의도는 한강에 떠 있는 섬으로 국내 정치와 금융, 방송의 중심지다. 1999년 4개 감독기관(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이 합쳐져 설립된 금감원은 지금의 여의도 본원 자리에 터를 잡았다. 호사가들은 여의도에 자리 잡은 금융기관 중 유독 금감원에 많은 사건과 불행이 집중됐다고 설파한다.

불행의 시작은 금감원 설립 이후 일년만에 발생한 장래찬 전 비은행검사국장의 자살이었다. 2000년 10월 당시 그는 동방금고 불법대출과 연루돼 검찰의 추적을 받던 중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상호신용금고(현 저축은행) 전문가'였던 그는 50~60개 부실금고를 퇴출시키면서 금고업계 '저승사자'로 불리며 입지적인 신화를 그렸다.

그런 그가 금감원 로비 창구 역할을 하며 동방금고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금융경찰’로서의 금감원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EBN
이후 금감원에서는 2~3년마다 금융권에 투하된 핵폭탄급 대형 악재를 처리하면서 과로로 쓰러지는 직원의 모습이 목격됐다.

LG카드사태를 수습하던 2003년 금감원은 건물 확장공사까지 치르며 공간 활용도를 키웠다. 옆 건물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의 일조량을 훼손하며 무리하게 증축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모두들 쉬쉬 했다.

이후 금감원은 금융권 사건·사고(카드사태·저축은행사태·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동양그룹 사태·감사원 감사)의 대책반장 뿐만 아니라, 정권 입맛에 맞게 활용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임기를 못 채운 수장이 교체됐고, 직원들이 과로와 병사로 죽어나갔다.

특히 과로사 트라우마는 깊게 드리워져 있다. 설립 이래 약 20여명의 임직원이 과로와 질병 혹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전언이다. 산재로 의심할 만한 죽음들도 적잖았다. S국장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고, 야근을 전전하던 J팀장은 뇌출혈로 목숨을 잃었다. 최근에는 인사팀 수석이 뇌출혈로 수술 받았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특성이기도 했지만 호사가들은 여의도의 흉한 풍수에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과로 비중이 높아 금감원 직원들은 단체보험 가입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원래 여의도는 물 위에 있는 모래섬이다. 근대 이전 여의도는 허허벌판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임시 비행장으로 쓰여지다 1970년대가 돼서야 국회의사당이 준공되고, 명동의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강제 이전되면서 증권사들도 못 이겨 입주했다. 이후 1982년 옛 대우증권, 1985년 대신증권 등 주요 증권사와 투신·운용사들의 본사가 속속 여의도로 모여들었지만 이들 증권사는 최근 몇 년 새 강북의 '좋은 땅'을 찾아 여의도를 떠났다. 금세 허물어질지 모르는 모래섬인 데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예나 지금이나 여의도권 근로자들은 적잖은 불만을 토로했다.

▲ ⓒEBN 경제부 김남희
그 사이 자본시장의 판도와 시장이 변화하면서 증권가로서 여의도의 위상은 많이 약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여의도는 동쪽은 증권가, 서쪽은 국회의사당이 있는 돈과 권력의 상징적인 장소로 각인돼있다.

1999년 통합 금감원 설립 당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금감원 초대원장)은 현재의 종로 SC은행(옛 제일은행) 본점을 금감원 자리로 낙점한 바 있다. “감독기관에 딱맞는 명당”이라며 제일은행 측에 매각을 요구했지만 은행에서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여의도를 떠난 미래에셋대우가 풍수를 보고 이사했다는 말이 나온다. 미래에셋이 위치한 서울 중구 수하동 센터원은 조선 시대에 동전을 만들던 주전소(鑄錢所) 자리였기 때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이사 간 증권사 중 잘된 곳이 많다"며 "동양증권은 유안타증권으로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강북으로의 이사 후 많이 회복했고, 키움증권도 상승세를 기록했으며 미래에셋대우도 사세를 더욱 키워가고 있다"고 했다.

풍수지리를 믿던 안 믿던 타기관과 단순 비교해봐도 금감원은 설립 이래 고초를 겪어도 너무 많이 겪었다. 올해에만 두명의 원장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금감원 업무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새로운 수장 취임과 낙마 퍼레이드만 반복하는 형국에 내부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금융 공직자의 무덤'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일반미(민간인)도 아니고 정부미(공무원: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도 아닌' 금감원 직원들은 금융시장의 검찰이라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맨날 힘없는 금감원만 당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현재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정책 권한은 정부인 금융위원회가 쥐고 있으며, 민간기구인 금감원은 금융위 지휘·감독 아래 감독업무를 수행하는 수직적 이원화 구조다. 기재부는 우리 경제 정책 큰 틀을 짜는 곳이다. 금감위와 금감원, 기재부의 관계재정립은 결국 우리 금융시장이 해결하고 치러야 하는 비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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