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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의 증권랜드] 회식 자제·펜스룰…"여성은 없었다"

박소희 기자 (shpark@ebn.co.kr)

등록 : 2018-03-14 14:01

▲ 박소희 기자/증권팀
영화 '더 랍스터'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한 호텔을 배경으로 합니다. 짝이 되는데 실패했지만 동물이 되긴 싫은 사람은 '숲'으로 피신해 모여 삽니다.

단 숲에서는 절대 여자와 남자가 말을 섞거나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남녀가 함께하든 분리되든 개인의 의사와 자율은 없습니다.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 증권가에도 이른바 '펜스룰'이라는 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성폭력에 엮일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 회식을 하지 않거나 따로 앉는 등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겠다는 건데 이런 펜스룰 자체가 성폭력과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성폭력은 여성을 다른 존재로 여겨 타자화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여성을 멀리하겠다는 펜스룰의 주도권 역시 남성이 쥐고 있습니다.

여성 임직원들이 회식을 안가겠다, 여직원 골프대회를 열지 말아달라고 한 적은 있는지 의문입니다. 상하 관계가 뚜렷한 조직의 윗선이 이를 하라 마라 컨트롤 하는 것. 여성을 타자화하고 우월감을 갖는 것. 이 같은 태도 혹은 의식이 성폭력의 근간이라는 겁니다.

미투 운동의 대안 혹은 조직사회의 방향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업무를 처리하고 밤늦게 까지 술을 마시더라도 별탈 없이 서로 잘 섞이는 것이지 남성과 여성의 분리가 아닙니다.

언제 회식을 하자는 지시가 업무상 위력인 것처럼 회식을 하지말라는 것 역시 위력입니다. 개개인의 의지가 모두 반영되고 조율되기 힘든 게 조직이지만 피해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부하 직원들의 의지는 조금이라도 반영이 되긴 했을까요.

기자 역시 그동안 통화만 해왔던 한 취재원과 둘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같은 시기에 혹시 모를 오해 사기 싫으니 여러명과 함께 보자며 정중히 말했습니다. 잠재적 가해자는 만남의 결정권이 있지만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은 선택이나 주도권 마저도 없습니다.

여직원 골프대회로 시끄러웠던 한 증권사는 업계에서 여성 임직원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유리천장이 높은 업계에서도 여성 인력 채용에 적극적이라는 뜻입니다. 여성이 많은 조직이니 여성만 참여해 친목을 다지는 행사를 열자는게 처음 취지였겠지요.

올해부터는 골프행사를 안한다고 합니다. 회장은 잠시 얼굴만 비춘다든지 장기자랑을 없앤다든지, 가고싶은 사람만 간다는지 하는 묘안은 없었을까요. 노조 조사 결과 대부분이 행사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행사 폐지라는 회사의 일방적 결정에 한 개인이자 여성 임직원의 의사가 반영될 의지는 없어보입니다.

펜스룰처럼 남녀가 분리되면 성폭력 문제는 더 퇴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증권가 뿐만아니라 조직은 이제 남성과 여성이 잘, 제대로 함께 어울리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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