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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아트+머니] 예술가와 권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8-03-04 11:02

▲ 연극 <백석우화> 포스터 이미지ⓒ네이버
퇴근길을 뚫고 막이 오르기 전 겨우 도착했다. 객석은 꽉 차 관객들은 통로에 방석을 깔고 앉아 극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쪽에선 외면당했고 북에선 억압받아야 했던 시인 백석. 연극 <백석우화>는 일제와 한국전쟁, 남북 대립을 겪어야 했던 백석의 무거운 세월을 녹여냈다.

시대가 주는 압력을 견디면서도 백석은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시를 썼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조선 최고 연애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가락을 입힌 연극인 오동식의 노래는 관객들을 백석의 고향 평안북도 정주로 이끌었다. 1월의 어느 밤이 마법처럼 다가왔다.

연출을 맡은 이윤택 감독은 인터뷰에서 “연극이 가지는 힘을 회복해갈 것”이라면서 “연극은 공동체이자 연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투’ 고발자들이 기억하는 이윤택 감독은 달랐다. 그는 권력자였고, 가해자였으며, 사회의 부조리였다. 그의 작품을 통해 치유와 해답을 얻고자 했던 지난날들이 스쳐지나갔다.

한 달간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문화예술계 대표주자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윤택 감독을 비롯해 고은 시인, 오태석 연극연출가, 배병우 사진작가, 배우 오달수·조민기·조재현씨 등 유명인사가 성폭력 의혹 당사자로 지목됐다.

여론은 '권력형 성범죄'라고 질타하며 선배에게 일을 배우고 커리어 확장을 의존하는 도제식 구조가 성폭력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문화예술인들의 상황이 문제를 은폐하게 했다는 지적도 보태졌다.

필자는 조금 넓은 견지에서 보려고 했다.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이라는 개발시대의 일등주의가 오버랩되어서다. '성공의 독재'란 개념을 제시한 하워드 하버드대 교수는 “성공의 독재는 우리 모두가 성공만능주의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개념“이라면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 마세요”라고 우리들에게 일침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성공 만능주의는 경제·금융·문화예술·체육분야를 막론하고 퍼져나간 상태다. 일등 대열에 들어선 이들은 제왕적 권력층으로의 이동했고, 동료와 주변인들은 이 일등 이너 서클(Inner circle)에 '밥그릇'을 의존하며 일등에 대한 찬사와 신화를 풀어냈다.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갑을 문화’가 심각한 수준인 것도 어쩌면 일등에 대한 신화에 기생하는 쪽이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특권 의식의 병폐는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사람이 권력에 도취되면 뇌상태가 변하고 공감능력이 쇠퇴한다는 연구결과를 통해서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폄하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기성세대가 신세대의 연약함을 지적하는 경우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나 아닌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의 ‘웨이터 법칙’이 같은 경우다. 보통 사람들이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차이를 없애고 함께 두려움을 극복하는 순간이 변혁의 시대를 이끈다는 것을 우리는 '촛불 혁명'으로도 경험하지 않았나. 혁명과 변화의 발원지는 결국 보통 사람들의 심장이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예술과 비즈니스, 경제 정책을 통해 인류가 필요로 가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권력에 취한 인간이 오만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적어지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연극 <백석우화>로 돌아가서, 무겁고 암울한 시대가 아이러니하게도 백석을 부동심과 항상심(恒常心)의 휴머니스트로 인도했다. 백석은 일제강점기에 상처 받고 몰락하는 우리 민족을 보며 가슴 아파 했고 민족혼과 지방 언어를 그대로 살려 시를 썼다. 한국인에게 닥친 운명적·문화적 위기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고뇌했고, 그래서 끝없이 방황했다.

물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다른 생명체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시선은 우리 인생에 있어 의무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도 나 자신처럼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공감의 폭만큼 더 숨 쉴 공간이 확장되는 것을 아닐까 생각해본다.

▲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2017) : 사랑의 모양’은 며칠 후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 13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괴생명체 존재에 천착해 왔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동화처럼 순수한 ‘사랑의 모양’을 그려냈다. ⓒ네이버


이쯤에서 영화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2017) : 사랑의 모양’은 며칠 후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 13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괴생명체 존재에 천착해 왔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동화처럼 순수한 ‘사랑의 모양’을 그려냈다.

언어장애자인 엘라이자는 괴생명체 ‘그’ 역시 자신처럼 상처 입은 영혼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이 둘은 폭력과 냉대라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신뢰와 사랑을 나눈다. 영화는 이들이 평범한 남녀가 아니라고 해서 차별적 시선이 만연한 사회를 타격한다. 사랑이란 물과 같아서 어떤 형태에 담기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한다.

영화에서 엘라이자는 “내가 불완전한 존재란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이들의 사랑을 통해 필자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 주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이 인생의 최고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성공과 실패, 갑과 을, 상위그룹과 하위그룹을 흑·백으로 나누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겉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지만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각자도생에 내몰렸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인간에 대한 예의, 권위주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세. 불완전한 우리는 이 같은 가치를 영원히 배워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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