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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까톡] ‘성장시대(?)'의 흔적 못 지운 금융당국

차별화된 컨텐츠와 인적자원·전략으로 생존해야하는 저성장기 속의 금융산업
예산 받아쓰는 금융당국, 민간보다 시장변화에 대한 '고통 임계점' 높을수도
금융산업 '기회의 땅'과 '절망의 바다' 판가름은 당국마인드가 좌우 "명심해야"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8-02-18 00:00

▲ 김남희 경제부 기자ⓒEBN
직장에 다닌다. 빚을 내서 집을 마련한다. 월급날 통장에 입금되는 급여로 대출을 갚고 자동차 할부금을 낸다. 소비를 유도하는 현란한 광고가 국민들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리고 목돈이 필요한 소비는 통장잔고보다는 신용카드에 의존하기 일쑤다.

주변에서 쉽게 마주하는 성장시대의 소비 패턴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은 국민들이 미래에 벌어들일 수입을 미리 앞당겨 쓰도록 해 이를 통한 소비가 만들어낸 추동력으로 성장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김형태 김앤장 법률사무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새로운 부채, 새로운 화폐, 그리고 새로운 학자금'이란 세미나를 통해 이 같이 주장합니다. "부채는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면 꾸준히 갚아나갈 수 있는 성장시대의 패러다임에 적합한 자금조달 수단이었다”라고 말입니다.

그는 "특히 대한민국은 부채를 통한 성장으로 나라를 지배해오면서 부채의 힘으로 승자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합니다.

이어 우리나라 경제를 향해 새로운 금융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는 "4차 산업혁명보다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우리경제 이슈는 학자금 부채 해결이며, 4차 산업을 이끌어 가야할 주인공들이 학자금부채로 질식해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인한 금융위기가 있었다면 다음번에 세계 경제를 기다리고 있을 위기는 학자금 부채 폭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최근 산업 전반에 불고 있는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에 대한 사견(私見)을 풀어볼까 합니다. 이는 재편되고 있는 경제와 산업 패러다임에도 팔짱만 끼고 있는 금융당국의 행태가 너무 답답합니다. 필자가 서두부터 부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입니다.

▲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고성장 시대를 지나 저성장기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예전과 같은 성장시대를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EBN
실제 한국GM이 폐쇄를 결정한 군산공장을 포함한 전직원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매각 철회된 대우건설도 구조조정에 나섰습니다.

설 연휴 직후 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 등 중소 조선사의 구조조정 검토가 이뤄질 것 같습니다. 앞서 수년간 정리해고를 거친 금융 산업에 있어서 구조조정은 일상화된 모습입니다.

2014년 증권업계의 인수합병과 희망퇴직을 시작으로 카드사, 은행, 보험사 순으로 인력조정이 시행됐습니다.

규모가 큰 구조조정만 눈에 들어올 뿐 소규모의 조정은 그때그때 이뤄지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카드 산업은 블록체인 영향으로 향후 가장 빨리 사라질 업종으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구조조정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와 동시에 금융업으로 생애 커리어를 채워온 금융맨들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치킨집 사장님으로 변신합니다. 3년내 폐업률이 높은 자영업으로 치킨집이 1위(38%)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고성장 시대를 지나 저성장기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요. 아비규환에 가까운 현재의 구조조정이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우리는 예전과 같은 성장시대를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격변기의 금융사와 금융당국은 어떻게 변화를 맞아야 할까요.

김진영 연세대 교수는 저서 ‘격의 시대’에서 “산업 발전단계는 양의 시대, 질의 시대, 격의 시대로 움직인다”면서 “이전 성공에 심취해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한국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익률이 받쳐주던 성장기 금융사들은 상품만 만들면 쉽게 팔아 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양의 시대'엔 양적 소비가 경제를 이끌었으니까요. 입담을 과시하던 금융맨들의 개인 맨파워도 한몫했습니다.

이러저러하다 저성장기가 도래했습니다. 양보다 질적 수준의 성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금융사마다 여전히 비슷비슷한 상품이 신상 딱지를 달고 등장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소비자들은 '금융전문가'가 난무하는 세상을 앞서 경험한 터라 좀 더 차별화된 상품과 신뢰자본을 기대합니다. 소비자들은 기회비용을 고려해 이해득실을 철저히 따집니다.

질의 시대의 금융사들은 양의 시대와 차원이 다른 컨텐츠로 경쟁해야만 하고 탁월한 인적자원과 투자처를 확보해야만 선순환 경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금융맨 한명 한명이 프라이빗뱅커(PB) 수준의 전문성을 가져야 하고, 금융사들은 활동무대를 국내에서 해외로 넓혀야 합니다. 더 큰 기회는 회색지대와 낯선 곳에 있기 때문이죠.

금융당국은 규제법망을 피했다는 이유로 칼을 휘두를 게 아니라, 피해자가 없는 순수한 민간기업의 시장 활동이라면 인정해줄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 신(新)금융 시대가 왔어도 당국엔 성장시대의 통치적 존재감만 남아 있습니다. 까다로운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로 금융당국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수준입니다. ⓒEBN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생산적 금융' 확산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그 '생산적 금융'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기만 합니다. 당국이 부르짖을 선언으로 그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생각입니다. 슬로건만 그럴 듯하고 실행은 미온적인 금융당국의 이중성에 지쳤다는 금융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기존 금융산업의 틀을 깨겠다며 당국이 주도한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몇 년째 시늉만 하고 있고, 성장시대 논리인 은산분리를 지금 패러다임에 맡게 혁파하겠다던 당국은 국회 앞에서 무력합니다. 또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눈치만 살피는 형국입니다. 지나치게 의욕적인 정권 앞에서 제 할말을 다 못하기도 합니다. 당국 내부적으로는 "올 연말까지는 조용히 숨죽여 지내야 한다"는 패배감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교해진 금융기법을 이유로 검사 인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금융당국자의 볼멘소리는 여전히 성장시대에 갇힌 금융당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기자의 눈으로는 검사 인력 충원보다 당국자 자질 향상이 우선돼 보입니다. 부족한 자원을 최적의 수준으로 활용하는 노력 말입니다.

신(新)금융 시대가 왔어도 당국엔 성장시대의 통치적 존재감만 남아 있습니다. 까다로운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로 금융당국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당국의 시계는 시장보다 두달 가량 느립니다. 2월 중순인 지금에서야 당국은 인사를 마치고 한해 업무계획을 완료했습니다. 시간은 무한한 자원이 아닙니다. 금융업만큼 타이밍이 중요한 비즈니스는 없습니다. "한국의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이 글로벌 금융시스템과 경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변별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한 금융인의 말이 떠오르는 시기입니다.

금융당국도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임을 깨닫게 된다면, 좀 더 민첩해질까요. 시장의 어려움을 알아줄까요. 어쩌면 예산을 받아쓰는 당국이다보니 민간기업보다 시장 변화에 대한 '고통의 임계점'이 높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 금융산업이 기회의 땅이 될지, 절망의 바다가 될지는 당국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