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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금융살롱] 직원이 주인공이다

교육에 도가 튼 금융사라 할지라도 직원에 주인의식 DNA 이식에는 한계
기업이 직원을 주인으로 존중하는 의식(意識)과 의식(儀式) 어우러져야
직원이 스스로 판짜서 능동적으로 일하는 주인공으로서 금융업 이끌 것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8-02-17 12:24

▲ 주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권한과 책임과 의무에 대한 자각이다. 그렇다면 금융사 직원들은 스스로를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을까.ⓒEBN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가져달라."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금융사 CEO들이 임직원들에게 하는 단골 멘트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사자성어 '자강불식(自强不息)'을 강조하며 자긍심과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질 것을 임직원에 당부했다. 이대훈 농협은행장도 신입행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도전정신과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 은행 업무에 있어 멀티플레이어인 직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직원이 돼 달라"고 말했다.

최고경영자가 침이 마르도록 임직원에 요구하는 '주인의식'. 주인의식은 무엇일까. 주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권한과 책임과 의무에 대한 자각이다. 그렇다면 금융사 직원들은 스스로를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사실 일하는 사람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처럼 부담스런 말이 없다. 경영자가 화두로 제시하는 주인의식과 금융사 실제 현장은 모순됐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을 운운하는 금융업이야말로 직원의 운신의 폭이 좁은 업종으로 손꼽힌다. 직원교육과 훈련에 도가 튼 은행이라 할지라도 직원들에게 주인의식 DNA를 심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주인의식은 스스로가 ‘주인공’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또 ‘일의 주는 의미’에서 무르익는다. 훈련받아서 생기는 주인의식은 단거리용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은행처럼 공동체적 속성이 강한 곳에서는 직원이 자신의 일을 ‘내 비즈니스’라고 여기고 정성들일 여지가 적다. ‘내 영업성과’와 ‘내 고객’이 형성되긴 하지만 순환 보직을 몇 번 거치다보면 ‘내 비즈니스 정신’은 쉽게 휘발돼 버린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사는 ‘리스크관리’라는 미명 하에 상명하복의 의사결정문화를 갖고 있어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핵심 경영진이 의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관리가 조직 생태계의 다양성과 통섭(개성이 어우러지는 통합)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 김남희 경제부 기자ⓒEBN
내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금융사서 어떻게 주인처럼 일을 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단순하다. 직원이 주인이 되면, 주인처럼 일할 수 있다. 혹은 직원이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와 애정을 키워갈 수 있게 긍정적인 경험을 쌓도록 해주는 방법이 있다. 일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면 일에 대한 자연히 주인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자는 금융업에 대한 애정을 가진 금융전문가가 각자도생과 제자리걸음의 금융 산업 해결책이라고 본다. 시험 성적순대로 발탁한 장원급제형 인재는 지시받고 관리·감독 받는 것에 익숙하다.

이에 반해 금융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업(業)의 전문성을 키워온 장인정신형 전문가가 ‘주인의식의 금융인’이며 주인공으로 활동할 개연성이 높다. 그는 산업의 발전과 자신의 성장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일을 살뜰히 챙기는 장인(master)이다. 순수한 기쁨을 갖고 일을 성취해 나가는 사람이다. 모든 직장인이 마스터 자리까지 도달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영역에서는 주인공으로 활동하며, 주도적으로 일을 이끌어나가는 게 발전적이다.

이쯤에서 한 보험사의 경영 케이스를 소개하고 싶다. 직원들을 주인공으로 대접해 직원 스스로가 회사 주인임을 일깨우기 위한 혁신을 최고경영자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어서다. 직원의 마음의 심지에 불을 스스로 댕겨 불을 지피도록 한 시도라는 면에서 다양한 기업이 참고했으면 한다.

이 회사 최고 경영자는 올 초 직원들에게 ‘직원인격권’을 강조하며 ‘직원들의 인격을 침해하는 악질 상사는 조직에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악질 상사는 근절 돼야 한다고 강조한 이 경영자는 “업무적으로 뛰어날 지라도, 기업문화 실행과 공정 평가에서 기준점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조직에 필요없다”고 밝혔다. 직원 스스로가 주도하는 삶이 전제되어야 일터에서도 주체적으로 임한다는 설명이다.

함께 내놓은 탄력근무제와 연차휴가 독자결정화에 대해 이 최고경영자는 “직원 스스로 일상에 대한 통제권이 강화되면 직무만족도도 높아지고 업무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임직원에 반문했다.

▲ 금융업에서 의미를 찾고 자아를 발견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 스스로 판을 짜서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종사자의 마음 심지에 불을 지피는일 없이는 주인의식도 요원한 일일 것이다. ⓒEBN


이 경영자는 직원들의 마음이 콩밭에 가지 않고, 자신의 일에 보다 깊은 애정을 갖기 임해주길 바라는 뜻에서 기업문화를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는 “눈치 보고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문화가 나쁜 문화이고 우리가 척결해야 할 대상”이라며 구태를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사각지대에 있던 총무라는 역할의 직함을 당사자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바꾼다는 점이다. 상사 프리라이더가 없도록 인사에서 상향 평가를 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어느 기업이나 ‘주인의식의 임직원’이 절대적이라는 면에서 게임기업 엔씨소프트 사례도 배울 점이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이나모리 가즈오가 활성화한 아메바식 경영을 펼쳤다.

이나모리즘으로 불리는 아메바식 경영이 팀별 수지타산에 집중했다면 엔씨소프트는 회계경영에 국한되지 않고 개별 팀이 독립적이면서 주체적으로 게임 개발을 할 수 있게 했다.

팀장격인 시더(Seeder)와 캡틴에게 예산 집행권한을 줘 게임 개발을 주도하도록 한 것이다. 개발 일정을 짜고 인적자원과 사내 인프라를 활용하는 의사 결정 모두 팀장의 몫이며, 팀이 자신의 일의 주인공이 되도록 했다.

엄밀히 말해 주인의식은 새해 신년사에서 강조하는 수준에서는 현실화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주인의식은 기업의 강력한 슬로건과 실행에서 비롯된다. 경영자의 강한 의지도 필요하다. 직원을 말로만 주인이라고 부르짖을 게 아니라, 주인으로 존중하는 의식(意識)과 의식(儀式)이 제대로 어우러지면서 공식화해야 '주인공'들의 마음에 불이 붙는다.

금융권에서는 '주인 없는 은행'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지배·지분구조에서 명확한 오너십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애정을 갖고 일을 처리할 사람이 없음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가 금융 산업을 지배하는 한국의 ‘관치 금융’이 ‘주체성 없는 금융사’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이 금융권을 떠나면서 남긴 말도 금융산업의 '주인공 의식'을 전제로 한다. 그는 “금융 산업의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10년, 20년이 지나도 글로벌금융사는 못 나올 것”이라고 일갈했다.

근본적 변화는 우리 금융사가, 우리 금융 산업 종사자들이 주인공으로서 일을 주도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노예금융' '머슴금융인'이 주인처럼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우리 금융사의 착각이자 오만이지 않을까. 올 한해는 금융업에서 자아를 발견하며 사회에 기여하려는 금융인의 욕구, 스스로 판을 짜서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금융사의 열정을 금융 산업과 금융당국에서 자주 발견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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