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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까톡] 금감원의 헤리티지(Heritage)

금융엘리트가 발산하는 집단지성의 힘과 금융감독업자의 경험자산 축적돼야
보상 중심기관에서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추세...최흥식원장 리더십에 주목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8-01-14 00:02

▲ 경제부 김남희 기자ⓒEBN
수년간 금융감독원을 출입하면서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감독기구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금융감독원(금감원)에서는 '헤리티지'(Heritage:국가·사회적 유산)를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헤리티지에는 한 조직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업(業)을 향한 장인정신이 반영돼 있지요.

추상적일수도 있지만 금융엘리트들이 발산하는 집단지성의 힘, 금융감독자의 ‘경험 자산’을 목격하고 싶었던 저로서는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서말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흩어진 금감원 개인의 지식을 수집하고, 제대로 가공하면 훌륭한 '감독 지침서'가 될 수 있고, 이것이 숙성되면 헤리티지로 격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필자는 최근작 '축적의 시간'을 통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힌트도 얻었습니다. 이 책은 “빠른 경제성장과 산업 변화, 단기성과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의 조직은 지식의 축적, 경험의 숙성을 거치기 어려웠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금융산업 감독의 경험은 금감원이라는 특수한 조직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로, 독점적인 자산입니다. 이 같은 경험적 자산을 결집하기 힘든 데에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제대로 집대성되기 어려웠을 것으로 유추됩니다.

1999년 이헌재 초대원장을 시작으로 이용근, 이근영, 이정재, 윤증현, 김용덕, 김종창, 권혁세, 최수현, 진웅섭, 최흥식 현 원장까지 19년간 11명의 수장이 금감원을 거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과 압력으로부터 취약한 탓에 금감원장이란 자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야멸차게 새 인물로 교체돼 왔지요. '축적의 시간'이 고려되지 않은 기관장 인사는 조각난 퍼즐처럼 분절돼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업과 마찬가지로 금감원은 수장의 임기동안 현안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 속에서 축적 역량을 쌓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울러 헝거게임 수준의 치열한 내부 싸움도 지식을 응집하는데 걸림돌이 됐습니다. 승진 한계를 느낀 부서장들은 너나할 것 없이 외부기관의 자리를 찾아 떠났고,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이들은 ‘뒷방 어른’ 신세로 전락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갔습니다.

포화된 조직의 해결책으로 매년 ‘세대교체’를 강조해 온 금감원은 지식과 경험이 집대성되기 어려운 구조가 됐고, 선배들의 경험담도 개인적 인연이 닿아야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금감원 내 업권·부서별 칸막이도 설립 때부터 지목돼 온 문제점이었고, 각종 부작용의 근원이 되어 왔지요. 학계 등 외부전문가들은 구조적으로 외풍에 취약한 금감원에 대해 독립성 확보를 주문해왔습니다만 일각에서는 결집되지 못하는 조직에게 정부가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지적도 내놓습니다.

지난주 금감원 직원들은 꽤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과감한 인적쇄신과 조직혁신을 위한 '메머드급' 인사가 예정돼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단행된 부서장 인사를 두고 금감원 안팎에서는 취임 넉달을 맞이한 최흥식 금감원장의 인사철학과 업무메시지가 그대로 투영된 객관적인 인사였다는 게 중론입니다. 학연과 지연을 과감히 탈피한 탕평인사였다는 평가가 대체적입니다. 특히 조직 사유화와 개인적 일탈로 기관에 물의를 끼친 인물은 보직에서 철저히 배제됐다는 게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부서장 출신지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골고루 배분해 지역적 안배를 이뤘으며, 특정 라인에 의존하지 않는 유연하고 도덕적 성품의 인물이 기용됐다고 합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특정 대학 출신이 포진했다는 불만을 품기도 했습니다.

금감원은 각 권역별로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64년~67년생 부국장을 전문성과 내부 신망, 도덕성 등 다각도의 평가를 통해 핵심 부서장에 배치했다고 설명했지요. 부서장 인사를 필두로 내달 초 세부 팀원 인사까지 마무리되면 금감원은 감사원 감사로 곤혹을 치렀던 지난해를 뒤로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조직 개편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금융감독연구센터'가 개설됐다는 점입니다. 물론 금감원은 씽크탱크 이상의 실행·집행기구이자 금융당국 핵심이라는 점에서 연구기관과 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금융감독연구센터를 통해 금감원 분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히스토리를 되짚으며 조직의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값어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좀 더 나은 가치의 상태로 격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금감원은 질식할 만큼 빠른 한국 경제성장 아래, 금융사와 함께 단기 성과 '리워드(Reward:보상)'로 성장해 왔습니다.

최흥식 원장은 '이제부터 금감원은 눈앞의 바다가 아닌 그 너머의 '대양'을 향해 나가자'고 제안하고 있지요. 그가 강조하는 '금융소비자보호'가 그런 '대양'으로 읽혀지는 이유는 소비자의 신뢰회복이 금감원의 헤리티지를 보다 더 밝혀줄 사회적 자산, 신뢰 자본으로 풀이되기 때문입니다.

한 집단의 헤리티지는 리워드에서 어워드(Award:공헌상)를 향해 나아갈 때 축적될 수 있는 가치라는 점에서 최 원장은 새로운 궤도 진입을 그리고 있다고 풀이됩니다. 올 한해 금감원이 만들어 내는 고유한 헤리티지를 기대해보겠습니다.
▲ 여의도 금융감독원ⓒE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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