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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성의 금융통발] 죽은 채권 부활, 이제 끝낼 때

김지성 기자 (lazyhand@ebn.co.kr)

등록 : 2018-01-11 10:30

▲ 김지성 팀장/경제부금융팀ⓒEBN
금융당국의 의지는 분명했다. 소멸시효완성채권(이른바 죽은 채권)의 추심과 매각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추심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새 출발을 위해서다. 대한민국 사회가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걸음이다.

최근 만난 금융위원회 서민금융 담당공무원은 "이걸 법으로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에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회에 관련 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국회 일정이 있는 것이니 협의하면서 법제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관련 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국회에는 현재 채권추심 관련법이 8개가 발의돼 계류 중이다.

대표적으로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죽은채권부활 금지법'은 지난 2016년 6월 발의됐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추심을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및 단체소송의 근거를 마련했다.

금융사들은 법원에 지급명령 등을 통해 시효를 10년씩 1~2차례 연장해 15년·25년까지로 늘려왔다. 또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도 채무자가 일부 빚을 갚으면 채무가 부활한다는 점을 악용해 '일부만 납부하면 원금을 대폭 감면해 주겠다'며 소멸시효를 무력화했다.

대부분 저소득·저신용층·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인 이들의 경제활동 재기를 지원하는 이 개정안은 햇수로 2년이 넘도록 법사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 계류 중이다.

제 의원은 "법으로 하면 반발이 심해서 법을 막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 의원은 "국회 구조가 어렵다보니 법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제도개선을 하고 있다"며 "법이 통과되면 더 좋지만 금융당국이 기본적인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금융권을 감독하면 된다. 이미 감독지침이 많이 반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안 통과 전까지 금융당국은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추심업체들을 지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시행 중인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은 올해 11월까지로 연장됐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추심·양도금지와 채권추심 전 통보의무 강화, 채무자 접촉행위 제한, 채무자 대리인 제도 등에 더해 채권추심 시 소멸시효 완성여부 통지를 의무화하고 특정 상황에서 추심을 금지하는 조항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같은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대부·추심업체에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정부 차원에서는 죽은 채권의 소각을 확대하면서 허점을 메우고 있다.

지난 10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자사와 국민행복기금 보유 소멸시효완성채권 1조5000억원 어치를 소각한 것은 행보의 하나다. 소각 대상은 장기 연체된 소멸시효완성채권 2259억원, 파산·면책 채권 9734억원, 사망채권 3395억원어치였다. 이번 소각으로 채무자 11만6000명이 빚에서 벗어나 경제활동 재기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는 죽은 채권의 소각 등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오랜 시간 추심을 받으면서 궁핍한 생활을 사회적으로 강요받고 있는 채무자들의 인권을 도외시한 기계적인 잣대로 보인다.

소멸시효 완성은 채권금융사에서 돈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전체 채권 시장의 규모나 금액으로 봤을 때 흔한 사례가 아니다. 더군다나 채권금융사에서 소멸시효완성 대상자를 선정할 때는 채권 회수 실익이 거의 없는 경우다. 채무자가 사회 배려계층일 확률이 높다.

대부업체들이 채무자에게 원금뿐 아니라 연체이자까지 독촉한다. 추심을 하다 안 되면 다른 대부업체에 계속 팔아넘기면서 소액의 채권이 눈덩어리처럼 불어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의 패자부활전 자체를 봉쇄한다.

무엇보다도 '죽은채권부활 금지법' 처리의 지지부진함은 부실채권을 회계장부에서 뺀 뒤 헐값에 대부업체로 '땡처리'하는 후진적인 금융시스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죽은 채권이 좀비화 돼 국민들의 삶을 더 이상 옥죄서는 안 된다. 이제 끝을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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