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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회장님의 갑질

"XX야 너는 월급받고 일하는 놈" 삐뚤어진 고용 의식 보여줘
'인성·능력' 검증없이 오너가 장악하는 기업문화 개선 목소리

이소라 기자 (sora6095@ebn.co.kr)

등록 : 2017-07-14 13:42

▲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운전기사를 향한 자신의 폭언이 담긴 녹취록 공개와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이장한 회장이 사죄의 뜻을 밝히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

"법이 없어서 갑(甲)이 횡포를 부리는 게 아니다."

우리사회 뿌리깊은 '갑을(甲乙)관계'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재벌갑질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된 상태에서 벌어진 '회장님의 막말' 사건에 비난의 화살은 오너일가의 권력세습 구조에 꽂히고 있다.

이장한(65) 종근당 회장은 1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본사 사옥 강당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상처받은신 분에게 사과하고, 자숙의 기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폭언 피해자' 운전기사들이 전일 공개한 10분도 채 되지않은 짧은 녹취록 2개가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폭언 피해를 주장한 운전기사들은 2015~2016년 근무당시 이 회장이 운전중인 자신들을 향해 내뱉은 대화를 녹취해 한 언론사에 제공했다. 이 회장의 운전기사는 1년새 무려 3명이나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에서 이 회장은 운전기사를 향해 "XX같은 XX. 너 생긴 것부터가 뚱해가지고 XX아. 조그만 부분 일도 못하고 XX아. 뭐 이딴 XX가 와가지고 일한다고..."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애비가 뭐하는 놈인데 제대로 못 가르치고 그러는거야 이거" 등 인신공격성 발언도 이어졌다.

또 다른 녹취록에서는 "월급쟁이 XX가 일하는거보면 꼭 양아치같애 이거. 마 XX야 너는 월급받고 일하는 놈이야 잊어먹지 말라고" 내뱉는 등 이 회장의 삐뚤어진 고용 의식을 보여줬다.

이장한 회장은 종근당 창업주 故이종근 회장의 장남으로 1994년 40대 초반의 나이로 일찌감치 대표이사 직함을 달았다. 이 회장은 현재 계열사 종근당바이오, 경보제약 등의 미등기 임원직도 맡고 있다.

이 회장의 '일탈'은 권력의 대물림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성과 능력의 검증없이 오너2·3세라는 타이틀로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는 국내 기업문화가 '갑의 횡포'를 무한생산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은 오너일가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일으키는 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로 30대 젊은 나이에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지난해 '갑질 패악'은 극에 달했다. 현대가 3세 정일선 현대 비앤지스틸 사장도 운전기사 폭행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대리산업 오너3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도 운전기사에 '폭언·폭행'을 일삼은 녹취록이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이 부회장은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미스터피자 정우현 전 회장도 같은 시기 빌딩 경비원을 폭행하는 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이달 초 가맹점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보복 영업'을 벌인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권력과 재력을 앞세워 특권을 누려온 오너일가의 피고용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바뀌기 위해선 재벌 총수에 의해 기업 경영이 좌지우지 되는 구시대적 문화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장한 회장은 빠른 시일 내에 폭언 피해 운전기사들을 직접 만나 사과를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자숙의 기간을 갖겠다"는 발언에 대해선 별도의 설명은 없었다.

종근당은 지난해 기준 매출 8300억원 규모의 상위 제약사다. 주요 제품으로는 해열·소염·진통제 '펜잘', 발기부전치료제 '센돔' 등의 제품이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에 종사해온 한 관계자는 "인권 문제에 민감한 해외의 경우 기업 경영인의 말실수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브랜드 이미지의 타격은 기업에 소속된 구성원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국내 재벌들의 문제는 특권의식만 있고, 그에 걸맞는 애티튜드(행동)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