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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의 '5전 6기' 도전…3대 걸친 '고로의 꿈' 이루다

  • 송고 2017.03.23 00:00 | 수정 2017.03.23 09:24
  •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60년대부터 5번의 고로제철소 도전 이후 6번째 성공

고로 제철소에 대한 동국제강의 집념...한국 철강산업의 이정표

브라질 CSP제철소에서 생산된 슬라브가 지구 반대편에서 1만9738km의 거리를 건너 동국제강 당진공장에 도착했다.

동국제강은 22일 당진공장에서 브라질 CSP 슬래브 입고 기념식을 개최하며 12년 글로벌 장기 프로젝트에 성공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창립 63주년을 맞은 동국제강은 창업자인 故장경호 회장으로부터 2대 故장상태 회장, 현재의 장세주 회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철강 한 우물을 판 기업이다.

동국제강은 1954년 한국 최초의 민간 철강기업으로 탄생한 기업으로 탄생 이후 고로의 꿈을 3대에 걸쳐 이어왔다. 고로사업은 반세기 이상 철강업만 고집해온 동국제강의 최고 지향점이었다.

故 장경호 회장은 '기업을 일궈서 나라에 보은하겠다'는 철강보국의 창업정신으로 1954년 7월 7일 동국제강을 설립했다.

철강 전문기업으로서 고로 제철소에 대한 도전은 동국제강 63년 역사와 함께하고 있고, 대한민국 철강산업에 이정표를 만들었다.

▲고로 제철소에 대한 동국제강의 집념...5번의 도전 이후 6번째 성공

동국제강의 고로제철소에 대한 첫 도전은 1962년 당시 정부 주도하의 국가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제철소 건설 기획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국제강은 재계 10위권의 기업으로 정부로부터 제철소 건설 계획의 적임자로 거론됐다.

하지만 동국제강이 희망했던 중형 고로 제철소 프로젝트가 대형 고로제철소 사업으로 확대되면서 결국 국책 사업화돼 포항제철의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 동국제강은 1965년 남한 유일의 제철소인 삼화제철소의 용광로를 인수해 석회석 소결로로 활용하기도 했다.

동국제강의 삼화제철소 인수에서부터 시작해, 1980년대 말에도 검토한 바 있으며, 1996년 부산제강소를 포항으로 이전을 시작할 당시 이미 고로사업 진출을 천명했으나, 이어진 외환 위기 등으로 이를 실현하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지난 1978년 인천제철(대한중공업공사)를 민영화할 때 동국제강은 다시 한번 고로제철소 사업에 도전했다. 당시 동국제강은 인천제철 인수 해 고로제철소로 확장하는 방안으로 도전했다. 하지만 결국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에게 인천제철이 인수되면서 동국제강의 도전은 꺾였다.

동국제강은 이와 동시에 1978년 정부의 제 2제철소 건설(현재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도전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포항제철로 낙찰, 동국제강은 고로제철소 사업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동국제강은 해외 제철소 진출을 조사하기 시작해, 인도네시아, 호주, 베네수엘라 등에서 제철소 건설을 검토했다.

특히 베네수엘라 제철소 건설을 위해서 1997년까지 장상태 회장(2000년 작고)은 아들 장세주 전무와 함께 5번에 걸쳐 베네수엘라를 방문하는 열정을 보였다.

베네수엘라는 철광석이 풍부하며, 정부가 직접 고로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한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집권 이후 자산 국유화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고, 동국제강의 도전은 다시 한번 고배를 마시게 된다.

동국제강은 또 1998년 한보철강공업을 포스코와 공동 인수해 고로진출의 기회로 삼았으나 유찰됐다. 결국 한보철강의 3자 매각은 장기 표류되다가 2004년 지금의 현대제철에게 인수됐다.

이러한 좌절에도 동국제강의 도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한 이후 동국제강은 브라질에서 고로제철소 사업을 다시 추진하게 된다.

장세주 회장은 2001년 회장 취임 이후 제철소 유치 열의가 강했던 브라질의 세아라 주를 선택하고, 2005년에 제철소 건설 사업을 공식화했다. 3세대에 걸친 고로제철소에 대한 도전이 결국 브라질로 수렴하게 된 것.

그리고 2017년 장세욱 부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드디어 브라질 CSP 제철소에서 직접 만든 쇳물을 굳힌 슬래브 5만8천톤이 동국제강 당진공장으로 입고되기 시작했다.

선대 회장에서부터 장세주 회장, 그리고 장세욱 부회장 두 형제 경영자에까지 이어진 집념의 결실이다.

▲ 브라질 CSP 제철소 경과…12년의 대장정(2005년~2017년) 마침표

동국제강은 브라질에 2005년 연산 150만t 규모의 전기로 방식을 활용한 직접환원 제철소 건설을 목표로 했다. 2005년 동국제강은 세계 최대 철광석 수출기업인 브라질 발레(당시 CVRD)사와 제철소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12월 공장 건설을 구체화했다.

전기로 직접환원 제철소 건설 사업은 2007년 난관에 부딪쳤다. 당시 남미 지역에서 자원 전력화 바람이 불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하는 전기로 직접환원 제철소 방식은 타산을 맞출 수 없었다.

결국 직접환원제철소 엔지니어링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파트너가 사업에 회의적으로 변하며 사업이 지지부진해졌다.

하지만 동국제강은 포기하지 않았다. 장세주 회장까지 직접 나섰다.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사인 브라질의 발레(Vale, 당시 CVRD) 와 주정부, 연방정부에 변함없는 사업 의지를 각인시켰고, 설득했다.

동국제강과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장세주 회장의 열정과 진정성은 마침내 브라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철광석 회사인 발레가 합작해 고로 제철소를 짓기로 큰 그림을 그렸다. 발레를 통해서라면 독자적으로 원료를 자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브라질 대통령이었던 룰라가 2007년 11월 발레와 쎄아라 주정부의 주선으로 직접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을 만났다.

장세주 회장은 “우리의 꿈을 믿고 지지 해준다면,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라며 호소했다. 룰라 대통령도 이 자리에서 장세주 회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연산 150만톤 규모의 전기로 직접환원제철소 사업이 연산 300만t급 고로제철소 사업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

동국제강과 발레는 5개월 뒤인 2008년 4월 브라질 현지에 CSP라는 현지 합작사를 설립, 고로 사업을 위한 새로운 준비에 나섰다. 이때 설립한 CSP가 지금까지 이어져 동국제강의 꿈을 이루게 된다.

지난 2008년 말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해 다시 브라질 제철소 프로젝트는 위기에 봉착했다.

앞을 내다볼 수 없고, 기업의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 1년간 지속됐다. 사업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합작을 검토하던 일본 철강사 등은 1년이 넘도록 답이 없었다.

동국제강은 마냥 기다릴 수많은 없었다 동국제강은 발레와 함께 2009년 12월, 고로 제철소 건설 예정지에 대한 산업단지 부지조성을 시작해 동국제강과 발레의 사업 추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한국에서 동국제강은 일본 철강사 대신 포스코를 설득했다.

결국 2010년 11월 포스코는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동국제강의 CSP 제철소 사업에 참여(20%)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인 포스코가 브라질 제철소 건설에 참여 하면서 제철소 건설과 기술·운영 등 모든 면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이다.

이후 동국제강은 제철소에 대한 사전 준비를 진행해 980ha(300만평)에 이르는 부지의 수목제거, 건설 환경 허가 등을 2011년까지 완료했다.

2011년 8월까지 제철소 원료 공급용 컨베이어벨트 준공, 부두 등을 마무리했고, 부지 정지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2년 7월 제철소 본공사 착공, 2015년 1월 고로 연와 정초식(제철소의 핵심 설비인 고로 내부에 내화벽돌을 쌓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게 된다.

▲ 내우외환의 '3중고'...형제경영으로 위기 극복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고로 제철소 건설이 탄력을 받아 마무리 단계로 갈 즈음부터 내우외환의 3중고가 닥쳤다.

프로젝트의 기회자인 동국제강은 글로벌 철강경기 침체와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2014년부터 경영실적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러한 와중에 브라질 제철소 건설은 브라질 현지 문화 차이, 노무 현황, 행정 절차 상이 등으로 공사일정이 지연되기 일쑤였다.

2015년 동국제강에 대한 검찰 수사와 이후 장세주 회장의 구속 등으로 동국제강의 신용도는 급락했다.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동국제강이 흔들리면서 CSP건설을 위한 30억달러 대출이 지연되는 등 CSP 제철소 사업은 공사 완료 1년도 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에 봉착한다.

위기 상황에 장세욱 부회장이 중심이 됐다.

장세욱 부회장은 2015년 7월부터 동국제강 단독 대표이사로서 위기에 처한 회사와 브라질 CSP 사업을 이끌었다.

장세욱 부회장은 비핵심 사업에 대해서는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슬림화하면서도 장세주 회장의 숙원 사업인 CSP 제철소 건립에는 회사의 역량을 집중했다. 미래의 전략사업으로서 동국제강이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소신과 3세대에 걸친 필생의 염원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서였다.

장세주 회장도 본인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회사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며, 옥중에 있으면서도 본사 사옥 페럼타워 매각, 2후판 공장 가동 중단 등과 같은 결정에 전권을 실어줬다.

그 결과 회사는 2016년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완전히 턴어라운드 했고, CSP제철소는 당초 2015년 12월 완공 시점을 6개월 정도 지난 2016년 6월에 고로 화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어 2017년 3월 22일 당진공장에 역사적인 슬래브가 입고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발레, 동국제강, 포스코 3개사가 브라질 세아라주에서 건설한 CSP제철소는 한국의 대표적인 철강기업 2개사가 합작으로 참여, 해외에 건설되는 그린필드(green field) 방식으로는 첫 사례다.

특히 이 고로제철소는 철광석의 공급은 발레가, 제철소의 건설과 기술지원은 포스코, 최종제품인 슬래브의 수요는 동국제강이 흡수하는 형태여서 원료에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합작 3사가 모두 해결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철광석에서부터 최종 철강제품까지 주주기업이 모두 흡수하는 최초의 철강기업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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