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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된' 김건섭 전 금감원 부원장...첫 시집 '주머니 속의 하루' 출간

30년간 '금융경찰'로 활동하며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 감독업무 수행
철저한 원칙 속 숨겨진 감성…탁월한 상징·비유·묘사력 통해 세상 탐험
평론가 "사상의 허기·취업문제…신세대 고민 성찰하는 철학적인 작가"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7-03-12 00:01

▲ 김건섭 시인의 시집 '주머니 속의 하루' 표지ⓒ북랩
전직 금융감독원 간부인 김건섭 시인<사진>이 시집을 냈다. 30년간 '금융 경찰'로 활동하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 산업을 감독해왔던 그 이면에 감춰진 감성의 원천을 느껴볼 수 있다. 금융 공직자로서의 현실과 시인의 상상 사이를 오가며 느낀 단상과 감성들이 시 속 깊은 곳에서 배여 나온다.

모두가 쉽게 지나치는 사물일지 언정, 그는 대상의 본질을 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는 시집을 통해 “돋보이는 상징과 비유, 묘사력으로 현실에서 만나지 못한 자아를 찾아 끊임없이 탐험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숨결이 흐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머니 속의 하루’라는 제목의 이번 시집은 이성과 감성의 탁월한 조화로 잉태한 시들이 담겼다. 1부 짧은 생각들, 2부 또 하나의 의미, 3부 주머니 속의 하루로 채워졌다. 앞서 그는 지난 2010년 계간지 <영남문학> 겨울호를 통해 등단한 바 있다.

우선 그의 시대정신에서 발현한 시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30년간 금융감독업에 종사한 그의 눈에 비친 여의도 금융권도 시 속에 담겼다. 금감원 임원으로서 조직을 이끌 때 느꼈음직한 ‘힘의 균형’에 대한 단상도 ‘양심’을 통해 형상화했다.

사냥하지 못하는/수사자의 비통함을 아느냐/떠밀려, 조기 퇴직한/가장의 심정을 아느냐/누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느냐/차마 드러내지 못하는/여리디여린 그/마음 깊은 서러움을 (명예 퇴직)

가진 것 하나 없어도 풍요로운 마음/먹지 않아도/포만감에 젖는/ 단풍 드는 전광판/상상 속의 오르가즘/그 절정의 미학 (상한가)

정의로 회귀하려는/최소한의 복원력/원심력을 당겨주는 균형의 힘/벗어나려는 욕구들을/이탈하지 않게 제어해주는/절묘한 구심점 (양심)

시집 제목이기도 한 ‘주머니 속의 하루’는 시집 마지막 백미를 장식한다.

예사롭지 않은 일상이 하나 가득 들어있는 것 같아/짙은 침묵 속. 공간마다 쌓이는 희미한 빛/내일보다는 주머니 가득한 오늘이/훨씬 더 명백한 사실로 다가오고/(중략)그대 순수한 마음 들여다볼 수 있는/내시경 하나 눈 속에 걸고/숨바꼭질하듯 그대 기억을/찾아갈 수 있다면/주머니 속 깊이깊이 개켜둔 그 행복을 오늘 하루 풀어낼 수 있다면,/(주머니 속의 하루)

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이해하는 그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이상 세계를 꿈꾸는 자유인으로 그곳에서 발견한 ‘찰나의 단상’ ‘순간의 세계’를 언어에 담아내는 창조자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것도 듣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탐험가이자 중간자적 존재다.

그는 수 십년간의 사회생활을 법과 원칙이 매우 중요시되는 금융감독업무에 열중해왔다. 그러나 그에게 내재돼 있던 시인으로서의 삶 또한 포기할 수 없었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그는 왜 시를 쓰게 된 걸까.

명확하고 철저한 기준 등 틀에 갇혀있는 공직자의 삶에서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인으로의 그의 변신에는 분명 크고 작은 계기가 숨어있었다.

▲ ⓒ김건섭 시인
그는 “조금 이른 퇴임과 동시에 병마와 함께 하느라 고민이 있었다”면서 “힘든 시기, 덜 익은 시를 한껏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그런 작은 위로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계속 붙잡고 있기보다는 오래된 것들을 밀어내야만 반걸음이라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해서 두 번째 책을 낸다고 했다. 작은 위로가 되는 시를 통해 반걸음을 나아갈 수 있어서 시를 쓰는 시인은 세상의 수많은 존재 앞에서 겸손한 모습이다.

첫 장에서 만나는 시 ‘홀로코스트(holocaust)'는 매우 인상적이다. 과거를 통해 오늘의 현실의 직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담았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이제는 변명을 할 만도 한데/늘 미안하다고 한다, 독일은/ 이제는 반성을 할 만도 한데/절대아니라고 한다, 일본은/ (홀로코스트) 전문

이 시에 대해 장사현 문학평론가는 “같은 전범(戰犯)인 독일과 일본을 민족성과 양심을 통해 대조하고 있다”면서 “각 단락 끝네서는 도치법을 활용함으로 시의 맛을 내고 대조의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평가했다.

장 평론가는 “김건섭 시인은 옛것에 대한 올바른 판단으로 오늘의 새로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면서 “시인은 일상의 익숙한 것들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것들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따뜻한 시선을 갖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세계관을 도출하고 있다”고 시평했다.

김건섭 시인은 시에 대한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그는 “시인의 시선은 따스하다. 그냥 스쳐 가도 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그들을 바라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면서 “오늘날 이러한 풍요 가운데도 사상의 허기, 취업 문제 등으로 고뇌하는 신세대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철학을 볼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7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시 부문 가작, 1981년 '영대문화상' 시 부문 가작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쓴 시와 수필을 모아 2007년 '머물지 않으면, 떠나지도 않는 것을'(에세이社)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를 계기로 시에 좀 더 관심을 두게 됐고, 2010년 영남문학을 통해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금융업을 감독하는 공직자로 수십년을 지냈다. 1956년생으로 경북고와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증권감독원에 입사했다.

1999년 금융감독원 검사국으로 이동해 증권감독국, 공시감독권, 기업공시제도실 등을 거쳐 자본시장조사1국 국장, 금융투자서비스국 국장, 금융투자 담당 부원장보와 부원장을 역임했다.

2014년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끝으로 30년의 금감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 감독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는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과 영남문학예술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앙 중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큰 것은 없다(한비자)'는 문장이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소개글이다.

시집 첫 페이지는 '어머님은 “누굴 닮아서...”하시며 빙그레 웃으실 테고, 생전 책을 놓지 않으셨던 선친께서는 마냥 좋아하시리라 짐작 한다'고 문을 연다.

이순(耳順)을 넘은 그의 순수함과 세상의 작은 존재에 대한 애정이 은은히 묻어나온다. 북랩,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