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 04 | 23
19.8℃
코스피 2,623.02 6.42(-0.24%)
코스닥 845.44 0.38(-0.04%)
USD$ 1378.5 -1.5
EUR€ 1470.5 0.5
JPY¥ 890.3 -1.0
CNY¥ 189.9 -0.4
BTC 95,600,000 215,000(-0.22%)
ETH 4,573,000 89,000(-1.91%)
XRP 790.1 16.1(2.08%)
BCH 736,600 4,800(-0.65%)
EOS 1,215 10(0.83%)
  • 공유

  • 인쇄

  • 텍스트 축소
  • 확대
  • url
    복사

[김남희의 산산조각 産山造閣] 압축성장의 대가

  • 송고 2016.07.29 08:32 | 수정 2016.07.29 09:09
  •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서울 명동거리ⓒ연합뉴스

서울 명동거리ⓒ연합뉴스

외환위기를 연상시킨다. 알려진 대로 우리 사회에 ‘사다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청년실업(고용절벽), 팍팍해지는 살림(소비절벽), 답없는 저출산문제(인구절벽), 날개 꺾인 수출(수출절벽), 불통의 정치(정치절벽), 여기에 부실 금융기관과 관치금융, 기업구조조정과 감원, 가계부채와 고령화까지….

이같은 총체적 위기를 오래전 예견한 학자가 있다. 송호근 교수다. 'IMF 사태를 겪는 한 지식인의 변명'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 교수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당시 상황을 정리한 회고록으로 19년 전에 출간됐다.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 교수는 우려했다. 외환위기를 몰고온 부정적인 우리문화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지 않는다면 IMF 사태와 같은 위기를 또다시 겪게 될지 모른다고.

송 교수는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며 윤리적 긴장과 정신문화 해체, 사익만 노리는 한탕주의가 판을 쳤기 때문에 외환위기의 비극이 찾아왔다"고 당시 사회를 일갈했다.

그의 글에 따르면 1997년의 한국은 서로 믿고 신뢰하며 살았던 전통적 지혜가 소멸됐다. 송 교수는 그때를 "문화가 없는 나라는 신뢰가 없는 사회"라고 기술했다.

당시 11월22일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가혹한 세계로 내몰렸다. 외환위기 열달 전에 터진‘한보사태'만 해도 지금의 대우조선해양 부실사건과 닮았다. 막대한 힘으로 우리 경제를 타격했다는 것. 또한 권력과 정치금융이 개입한 거대한 재무부정 비리, 5조원 이상의 부실을 초래했다는 점이 '평행이론' 수준이다.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사건이 마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된 듯.

송호근 서울대 교수ⓒ연합뉴스

송호근 서울대 교수ⓒ연합뉴스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이 그해 1월31일 공금횡령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고 여야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송 교수는 "한보의 이중장부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복잡한 것"이었다면서 "7조원에 달하는 거대 차입자금을 여기저기 입막음용으로 허비했다"고 비판했다. 이 지점에선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가 오버랩 된다. 가짜와 엉망으로 여겨지는 회계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투자계획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우조선해양에 들어간 나라 살림살이가 한보처럼 슬쩍슬쩍 새나갔던 것이다.

회계법인도 대기업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 감싸주기 급급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을 빚고 있는 두 국책은행과 조선·해운업도 윤리적 버팀목과 분별력을 상실했다. 송 교수의 지적대로 "압축성장으로 인해 치열한 경쟁만 남고, 정신문화가 소멸해 삶의 긴장과 지혜가 사라진 탓"이다.

다음은 송 교수가 제시한 '압축성장의 대가로 한국이 얻은 사회심리 10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이같은 사회심리를 고치지 못하면 IMF사태보다 훨씬 강도 높은 파국이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는데 그때가 이미 1997년 말이었다.

< 압축성장의 대가로 한국이 얻은 '사회심리 10가지' >

1. 평등주의=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 오래된 신분질서에 대한 극단적 반작용이기도 한 이 평등주의는 질적 평등보다는 양적, 형식적 평등을 선호한다. 그래서 출세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을 인정하기보다 운과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치부한다.

2. 치장 사회주의(cosmetic socialism)= 한국 사회에서 자원분배의 최선의 기준은 업적 여하를 막론하고 똑같이 나누는 것이다. 능력과 업적을 잣대로 도입하면 조직은 금세 갈등에 휩싸인다.

3. 비관적 낙관주의= 밀어붙이면 이뤄진다는 막무가내식 관습이다. 때로는 활력으로도 표출되고, 때로는 주먹구구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낳고, 안전불감증, 사고불감증, 대응불감증을 조장한다.

4. 형식적 권위주의= 가족과 기업을 포함해 모든 사회조직이 위계적 권위로 이뤄진다. 이는 예절과 예의에 내포된 존경심과는 성격이 다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을 더 했고, 직책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과다한 권한을 행사하거나 그에 맞는 대접을 기대한다. 이 같은 형식적 권위주의가 제도화된 것이 연공임금제, 호봉제, 승진제도다. 나이 들면 저절로 승진해야 한다고 믿는다.

5. 이기적 자조주의= 자신의 것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나타날 때 사회에 문제가 발생한다. 능력 없는 사람,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 무지한 사람을 돕는 데에 인색하다. 무능력자를 경멸하고 차별한다.

6. 가족 이기주의= 가족 중심적 사고가 한국보다 높은 나라도 드물다. 가용한 모든 자원이 가족에게 투자되고 또 재생산된다. 재벌의 가계 승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재산과 신분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재산환원과 기부행위는 드물다.

7. 독단주의 또는 토론문화 부재= 공적 쟁점을 높고 토론하는 관습은 거의 없다. 독단주의는 연장자, 책임자, 기관장의 경우에 강하게 나타난다. 성장 과정에서 토론문화를 경험하지 않은 탓도 있고 다른 집단의 처지를 생각해보지 못한 까닭도 있다.

8. 연고주의= 모든 경쟁이 지역·학연·혈연에 입각한 연고주의로 이뤄진다. 경쟁의 공정한 룰은 무시되고 선후천적 요소가 위력을 발휘한다. 출신지역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형성된 집단이 많아지면서, 경쟁 매커니즘에 대한 극단적 불신감이 팽배한다.

9. 배타적 엘리트주의= 최고의 학부와 최고의 학교를 나와야 엘리트로 자처할 수 있으며, 엘리트 집단에 진입할 수 있다. 자녀교육에 과다한 투자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엘리트 집단에 들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 사회는 일단 엘리트 집단에 들었다고 간주되는 사람에게 부당한 혜택을 제공하도록 짜여있다.(필자는 이 대목에서 홍만표·우병우·진경준 사태가 오버랩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등용되는 엘리트 풀(pool)이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은 이런 까닭이다. 결혼도, 친교도 이런 경계내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그로부터 배제된 일반 서민을 얼마나 생각하는 지는 미지수다.

10. 국가주의= 모든 사회현상의 잘잘못을 국가 책임으로 돌린다. 이재민도 국가 배상을 청구하고, 가뭄도 국가 책임이다. 빌딩이 무너져도 국가, 다리가 끊겨도 국가 책임이다. 국가가 모든 사회현상의 중심적 역할을 자처해 왔기에 생겨난 습성이다. 그 때문에 공과 사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해졌다. 지난 30년간 국가가 시민들에게 책임을 결코 맡기지 않았기에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 그 결과 사회의 모든 집단은 '자율성'을 상실했다.

이 열 가지 사회심리가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우리가 의도적으로 기르고 있던 가치관이었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글 말미에 송 교수는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IMF사태는 압축성장으로 얻는 사회심리가 빚어낸 비극인 만큼 부정적 사회심리를 긍정에너지로 바꿀 설계가 지금 어서 필요하다고.

또한 서구가 100년간 이룩한 물질적 풍요를 불과 30년 만에 해치운 우리 처지를 돌아보고, 뼈아픈 반성으로 ‘팍스 코리아나(평화의 대한민국)’를 다시 실현해야 한다고. 19년전의 제안이다.

ⓒ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시황

코스피

코스닥

환율

KOSPI 2,623.02 6.42(-0.24)

코인시세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비트코인캐시

이오스

시세제공

업비트

04.23 18:26

95,600,000

▼ 215,000 (0.22%)

빗썸

04.23 18:26

95,550,000

▼ 225,000 (0.23%)

코빗

04.23 18:26

95,538,000

▼ 118,000 (0.12%)

등락률 : 24시간 기준 (단위: 원)

서울미디어홀딩스

패밀리미디어 실시간 뉴스

EBN 미래를 보는 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