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머릿속에는 ‘전가의 보도’처럼 내려오는 비기가 있다. 바로 ‘기업 팔목 비틀기(혹자는 손목 비틀기라고도 칭한다)’ 신공이다. 정부 차원에서 뭔가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가진 돈이 부족할 때 구사하는 신공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대책을 내놓으면서 또 한 번 그 신공을 발휘했다. 10년에 걸쳐 1조원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는데 그 돈을 기업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FTA 덕에 기업들이 이익을 보게 됐으니 반대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어촌을 위해 기부금을 내놓으라는 논리다. 정책 입안과정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다분히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느닷없이 기부금 ‘고지서’를 받아들게 된 기업들 입장에선 볼 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상생기금은 자발적 기부로 조성할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기업과 정부, 정치권의 역학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 ‘자발성’이란 게 그다지 믿을 게 못된다.
기업들이 이번 상생기금에 전례 없이 강하게 볼 멘 소리를 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팔목 비틀기 신공을 너무 자주 휘두른다는 점이다.
현 정부 들어서만도 기업들은 창조혁신센터 설립, 재단법인 미르 설립 등에 수백억 원의 기부금, 또는 출연금을 갹출했다. 또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런 저런 명목으로 기업들에게 기부금 부담을 안기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만든 사회투자기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들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마치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요컨대 “팔목 비틀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내 팔목이 자기 팔목인 줄 아나”라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다자간 개방협정을 감안하면 이런 걱정은 그저 엄살로 치부할 일만도 아니다. 그 때마다 상생기금의 조성 목표가 커지거나 새로운 기금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팔목 비틀기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기업들의 순수한 자발적 사회공헌활동을 상대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기업들로서는 사회공헌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이 한정돼 있다. 그런데 팔목을 비틀려 여기저기 예산을 쓰다보면 정작 자발적 사회공헌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끝으로 사족을 달자면 팔목 비틀기 신공은 원래 ‘어린애 팔목 비틀기’라는 우리말 표현에서 유래했다. 그 뜻은 ‘상대의 힘이 너무 미약해 어떤 일을 강요, 또는 강제하기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팔목 비틀기는 신공이라 하기에는 부끄러운, 하지하책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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