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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칼럼]이건희 독특한 화법이 오해불렀다

  • 송고 2011.03.12 14:19 | 수정 2011.03.12 14:28

“이제 겨우 졸업했군.”

2003년말 서울 한남동 승지원. 삼성의 영빈관인 승지원에선 연말을 맞아 이건희 회장 주재로 삼성 사장단이 저녁을 함께 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을 맡고 있던 이기태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기에 처한 휴대폰 사업을 정상화시키라는 특명을 받은 이기태 사장은 품질개선과 독창적 모델 개발에 힘써 애니콜 브랜드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 사장은 애니콜 사업 성공으로 당시 황창규 반도체부문 사장과 함께 투톱체제를 형성하며 삼성전자의 간판 최고경영자로 각광을 받았다.

이 회장은 대놓고 그를 칭찬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사업부문이 현재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절대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라는 의미에서 “이제 겨우 졸업했군”이란 다소 인색한 표현을 했다. 칭찬은 아니지만, 애정이 담긴 말이었다.

이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뛰어난 실적을 내도 공개적인 칭찬은 잘 하지 않는다. 언제나 “잘 나갈 때 더 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라”며 채찍질을 한다.

그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경영혁신에 나섰을 때도 위기의식을 제창했다. “앞으로 5년, 10년 후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 땀이 난다”고 말해 사장단을 잔뜩 긴장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수년간 반도체 휴대폰 LCD등의 호조로 사상 최고의 실적을 매년 갈아치울 때도 “지금이 중대고비다. 앞으로 10년 후를 내다보고 신수종사업을 키워야 한다”며 담금질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리더십이다.

이 회장은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판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유화 중공업 등 계열사에 대해선 ‘암3기 환자’, ‘선천성 불구자’ 등의 격한 표현을 써가며 품질 혁신과 구조조정, 신수종 사업 등을 통해 환골탈태할 것을 촉구했다.

삼성특검 이후 일선에서 퇴진했던 그는 지난해 경영 복귀 일성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전자의 주력제품들이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면서 신수종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위기 경영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다른 총수들과는 달리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 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중국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 도중 ‘정치는 4류, 정부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표현을 쓴 것도 마찬가지다. 이 비유는 당시 이회장의 베이징 설화(舌禍)사건으로 유명해졌다.

이 발언은 정치권과 정부를 싸잡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복잡한 행정 규제와 관료주의, 정치권의 정쟁이 사라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위한 발언이었다. 기업들은 당시 골프장 건설하는 데 도장만 1,000개가 필요할 정도로 규제가 많다는 점을 호소해왔다. 경쟁국가들은 과감한 규제완화와 세제감면, 외자유치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더기 규제와 관료주의로 기업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경고하기위한 것이었다. 이래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점을 알리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치권, 언론은 이 회장의 진의보다는 4류, 3류 등의 비유에만 주목, 마치 업인이 청와대와 정부에 대들었다는 데만 초점을 맞춰 본질을 흐린 측면이 있었다. 삼성은 설화사건 후 청와대의 기류가 심상치 않자 중소기업에 대한 현금결제 및 투자 확대 등의 수습책을 내놓아야 했다.

이회장의 설화사건은 우리나라 특유의 후진적인 정-경(政經)관계, 즉 정치가 경제를 통제하고 압도하는 데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 국가장래와 나라경제에 대한 깊은 고민을 거쳐 발언을 해온 이 회장은 이를 계기로 대외행보를 자제하고, 언론 인터뷰 등을 기피했다.

이 회장이 10일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앞서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면했다”고 한 발언이 파장을 낳고 있는 것도 그의 독특한 화법에서 비롯됐다.

청와대는 이 회장의 발언이 전해진 후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다시금 설화사건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회장 발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부분 잘못 받아들여진 점이 많다. 그는 ‘현 정부의 경제 성적표를 몇 점 정도 주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참 어려운 질문”이라고 전제한 후, “계속 성장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해왔으니...”라고 말했다.

언뜻 ´낙제는 아니다´는 표현은 듣기에 따라 현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냉정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이 평소 임직원들에게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10년 앞을 내다보고 끊임없이 긴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온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상당히 고무적인 평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했다고 강조한 점은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를 잘 수습해왔다는 것을 완곡 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성 사장들은 이회장이 통상 칭찬보다는 자만을 경계하는 말을 많이 한다고 강조한다고 전하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은 최근 ´이 회장의 스마트 TV에 대한 주문´을 묻는 질문에 “이 회장은 항상 만족하는 경우가 없다. 자만하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이어 ”이 회장은 디지털 시대에는 한눈팔면 언제라도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의 이같은 기본 철학과 위기의식은 10일 전경련 회장단 발언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그의 체질화한 위기의식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에도 나타난 것이다.
삼성 관계자도 “그룹 안과 밖에서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내부에서라면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하는 말 자체는 상당히 고무적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 특유의 화법은 언뜻 보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나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에서 이 회장 발언을 곡해해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의 발언은 “우리가 앞서가고 있다고 흥분하지 말고, 신발 끈을 고쳐매서 선진국 도약을 앞당기자”는 취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낙제점은 면했다”고 한 것에 대해 “청와대에 정면 도전했다”는 식으로 곡해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우리경제는 다시금 위기를 맞고 있다. 중동발 민주화 사태로 고유가 행진이 이어지고, 국제원자재 가격급등으로 물가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3차 오일쇼크가 장기화하면 경상수지가 악화하고, 수출은 급감하는 등 우리경제가 심각한 몸살을 앓을 수 있다. 서민들도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의 도발위협은 더욱 커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최근 순매도를 늘리는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3% 물가, 5% 성장´ 목표는 대외 악재로 인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대외불안이 확산되면 ‘ 3% 성장, 5% 물가’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유능한 기업인은 낙관적인 시나리오보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경영계획을 수립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위기돌파 경영에 지혜를 모은다.

경제대통령을 자부해온 이명박 대통령은 규제완화와 비즈니스 프렌들리 등을 통해 OECD(경제협력개발국가) 중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6%의 고성장을 이룩하면서 경쟁국들의 부러움을 샀다. 세계 주요국의 정상을 초청, G20회담을 개최하면서 국격도 높였다.

하지만 국내외의 여러 가지 악재가 분출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마냥 자화자찬할 때는 아니다. 이 회장은 이같은 위기 요인을 들어 현재에 안주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정부, 기업, 국민 등 모든 경제주체가 불확실한 국내외 여건에 맞서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잠깐의 성과에 도취돼 대외악재를 방치하면 우리경제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 발언에 대해 집권 후반기가 되면서 총수들이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고 인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재계를 대표하는 총수가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해 깊은 사색을 거쳐 발언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갈등을 키워봐야 청와대와 재계간 갈등만 확산된다. 갈 길 바쁜 우리 경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태풍이 몰려올 때는 배가 뒤집히지 않도록 정부와 재계가 손을 잡아야 한다. 이명박대통령은 이런 때일수록 경제활성화의 주역인 재계총수를 동반자로 여겨 위기의 바다를 함께 헤쳐가야 한다. 지속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인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일자리를 창출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고용없는 성장’의 고질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는 정권 초반기의 경제성적을 후반기에도 이어갈 수 있도록 재계와 협력하는 게 현명한 리더십이다. 총수가 바른 소리를 한다고 손보기 대상으로 여긴다면 다시금 몰려드는 경제먹구름을 제거할 수 없다. 하수(下手)중의 하수다. 알을 낳은 닭은 정성스럽게 돌봐야 한다. 놀라게 하거나, 못살게 군다면 닭은 알을 낳지 않는다.

이의춘 편집국장 junglee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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