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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칼럼]장하준의 어이없는 ´삼성통제론´

  • 송고 2011.01.07 15:48 | 수정 2011.01.08 18:06
  • 이의춘 총괄국장 (jungleelee@ebn.co.kr)

이사진에 정부 노조 시민단체 40% 참여하는 방안 제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부인하는 위험한 발상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저서가 3개월여만에 28만부나 판매되면서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도마에 오른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통렬히 비판하며 더 잘 규제된 자본주의를 모색하자는 그의 주장은 주류경제학계에 강펀치를 날리며 진보진영 학자들과 매체들을 사로잡고 있다.

진보 매체들은 그를 신주단지 모시듯 수차례 인터뷰와 서평 등을 통해 ‘장하준 신드롬’을 확산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경제정책(MB노믹스)을 펼쳐온 이명박 정부에 대한 ‘회심의 한방’을 고대해온 진보진영에선 그가 마치 구세주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진보진영의 ‘비이성적 열기’로 볼 수밖에 없다.

진보진영과 좌파매체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가 주류경제학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상파괴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신자유주의는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로 만신창이가 됐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 책에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뼈대가 되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 정부 소유 기업 및 금융기관 민영화, 금융 및 산업부문 규제완화, 무역과 투자 자유화, 감세, 복지지출 축소 정책이 재앙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이 정책들이 전 세계 국가들의 성장둔화와 불평등, 불안정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서 깨어나 새로운 자본주의를 찾아보자는 게 그의 논지다.

장 교수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 진보매체는 김영호 유한대 총장(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 역임)의 말을 빌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는 ‘좀비’가 됐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감세 등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다 같이 떠오른다’는 신자유주의 논리는 틀렸다며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흔히 강조하는 비유, 즉 꼭대기에서 늘어난 부가 결국에는 아래로 똑똑 떨어지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는 없다는 논리다. 신자유주의식으로 시장에 소득재분배 문제를 맡겨두면 상류층의 부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정도가 미약하다는 것.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며,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손해를 볼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와 체급에서 워낙 차이가 나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손해를 본다는 지적이다. 밴텀급 수준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헤비급 복서인 미국과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FTA 체결반대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경쟁국들이 앞 다퉈 세계 각국과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 대열에서 낙오된다면 수출이 타격을 받고, 경제성장도 뒷걸음질치거나 정체될 수밖에 없다. 자원이 빈약한 숙명적 상황을 타개하고, 선진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세계 시장을 상대로 공략을 해야 한다.

장 교수도 우리나라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데 수출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FTA 반대 논리는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한 것으로 1970~1980년대 유행했던 남미식 종속이론의 아류처럼 보인다. ‘반미’로 먹고 사는 진보 및 좌파진영에 이용만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패배주의적인 발상이나 다름없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에 자동차를 한해 100만대 이상 수출하고 있다. 반도체 휴대폰 LCD 등 주력제품의 최대 시장이기도 하다. FTA 체결로 미국의 관세가 더 낮아지면 주력제품의 수출에 날개가 달릴 것이다. 이웃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한미FTA 체결로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며 ‘제2의 개국 대책’에 부랴부랴 나서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과의 FTA는 수출확대를 통한 국부창출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농산물 등의 수입이 늘어나 관련 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대차대조표를 따져보면 우리나라에 플러스 효과가 훨씬 더 크다.

내수시장도 우리는 선진국기업들에 호락호락 내주지 않았다. 예컨대 미국의 다국적 유통체인인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했다가 ‘코피’터지고 철수한 사례를 기억하는가? 이마트 롯데마트 등 토종 유통업체들은 한국 소비자들에 맞는 맞춤형 전략으로 골리앗을 물리쳤다. 프랑스 거대 유통업체인 까르푸도 한국에 들어왔다가 백기투항하고 보따리를 싸야 했다.

2000년대 초 한-칠레 FTA 체결될 당시 포도와 축산농가들은 와인 및 쇠고기 돼지고기 수입 급등으로 ‘다 죽게 생겼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외쳤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가? 우리나라의 전자 자동차 등의 칠레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반면 수입급증으로 타격이 우려됐던 포도밭 농장주들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국산 돼지와 한우 가격은 수입산보다 품질경쟁력이 높아지고, 가격도 올라갔다. 한우 등의 사육두수도 줄기는커녕 더 증가했다. 개방에 따른 체질 강화와 품질경쟁력 향상으로 축산농가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소득도 증가한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개방이 가져다 준 긍정적 효과다.

장 교수의 논리는 이렇듯 상당부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왜곡이 심하다. 비주류 경제학자로서 책상 물림, 패배주의적 사고가 짙다.

물론 장 교수가 비판한 것 중에는 주류경제학자는 물론 보수진영에서 고민해볼 것들도 있다. 지식산업육성과는 별개로 제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야 한다는 것과 세계 금융시장에 재앙을 몰고 온 금융파생상품(CDO, CDS 등)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이 가는 대목들이다.

빈부격차 해소와 소득불평등 개선 등을 위해 최고경영자들의 과도한 보수체계를 바꾸고, 경제위기 시 실업난 타개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부의 역할 확대도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귀담아 들을 만하다. 1930년대 대공황을 구원한 케인지언 정책의 흐름을 잇는 이들 대책은 세계 각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사용한 카드들이기 때문이다.

장 교수가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해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에 엄청난 지적 반향을 일으켰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물론 심지어 여권의 유력인사마저 그를 초청해 ‘포스트 신자유주의’ 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할 정도가 됐다.

그러나 장 교수의 최근 행보를 보면 경제학자로서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진보매체가 그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것에 한껏 고무된 듯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발상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 등 대기업 통제 방안이다. 그가 최근 진보매체인 프레시안과의 회견(1월 4일자)에서 재벌 규제 방안을 제시한 것은 끔찍한 발상이다. 자본주의를 지지한다는 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는 삼성이 이건희 회장에서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으로의 경영권을 이양하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삼성 통제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씨 일가(이건희 회장 · 이재용 사장)가 그렇게 경영권 세습을 원한다면 그것을 들어주는 대신에 노동조합 허용, 정부 ·노동조합 · 시민단체 등의 이사회 참여, 일정기간(10년)이 지난 후 경영성과 평가 등을 요구하는 것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2세 승계를 용인해주는 대가로 노조를 인정하고, 이사회의 40% 정도를 정부, 노조, 시민단체 등에 할당해 사회의 감시를 받게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체제 속에서 10년 후에 그 경영권 세습의 결과를 평가하자는 방안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삼성을 통제하는 방안으로 시민단체들의 주주자본주의 운동보다는 국유화 방안이 더 낫다고 했다. 외국 투기 펀드 등을 이용해 삼성을 공격하는 주주 자본주의는 삼성을 국제 금융자본의 소유물로 전락시키므로 차라리 국유화를 주장하는 게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저명한 경제학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자본주의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경제시스템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민간기업의 이사회에 정부와 노조, 시민단체를 40% 참여시키라니...사실상 삼성을 해체하고, 이건희 회장, 이재용 사장 등 오너들은 그룹 경영에서 손 떼라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리 장 교수의 개인적 아이디어라고 하지만 어이가 없는 발상이다.

국영기업이라면 모를까. 국영기업도 노조와 시민단체 인사를 40%가량 채우면 효율적인 경영이 불가능해 결국 국민 혈세만 줄줄 새게 할 가능성이 높다. 공기업 경영진의 경영활동, 예컨대 국내외 투자 및 임금협상, 신규사업 진출, 인수합병 등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기업 지배구조는 주주들이 결정할 사안이다. 삼성의 외형과 사업영역이 아무리 크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고 해서 국가가 사회주의식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장 교수의 ‘위험한 발상’이 실현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삼성전자 이사진에 정부인사와 노조, 시민단체인사들이 포진한다면 신수종 발굴 및 주력사업 육성과 사업재편 등을 위한 전략적 의사 결정이 표류할 것이다. 초일류기업들도 순간적으로 졸면 도태되는 무한경쟁시대에 의사 결정이 표류한다면 치명적이다.

가뜩이나 삼성에 반대하거나 삼성 해체를 공언해온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감놔라 배놔라 하며 경영진 때리기 경쟁을 벌일 것이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씨앗을 뿌리는 신수종 사업의 경우 초기에는 적자가 불가피하다. 삼성의 오너경영은 당장의 적자를 무릅쓰고도 그룹의 미래에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게 강점이다. 삼성만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LG SK 등 우리나라 주요 그룹들의 오너경영이 단기수익보다는 장기 투자를 가능케 했다.

주요 그룹 계열사 이사진에 노조와 시민단체 인사가 포진해 있다면 멀리 내다보는 장기경영이 가능하겠는가? 삼성이 그동안 벤치마킹하기 바빴던 소니 도시바 파나소닉 등 일본경쟁사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부상한 데는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과 단기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안목경영, 뚝심경영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일본은 전후 재벌해체로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기업경영이 이뤄지면서 단기 업적주의에 급급, 오너경영이 지배적인 한국대기업들에게 세계 정상의 자리를 내주고 있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스피드경영이 생명이다. 경쟁사를 압도하는 힘의 원천은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나온다. 삼성 이사진에 노조와 좌파 시민단체가 들어오면 이 같은 강점이 무력화될 것이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장 교수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하다니...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그가 노리는 게 뭘까? 불순한 의도가 없길 바랄 뿐이다.

지배구조는 기업마다 주주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기업마다 성장환경과 사업구조, 기업문화가 다르고, 대주주의 리더십도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획일적으로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재벌개혁의 주무기로 지주회사 전환을 강요했다.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과도하게 기조실 해체와 지주회사 전환을 강요한 것은 기업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한 가공자본으로 계열사를 확장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에게 순환출자가 많았던 것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근대적 자본축적의 기회가 취약한 것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단기간에 자본을 확충하고, 위험을 분산시키는 측면에서 계열사간 순환출자는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순환출자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은 왜 처음부터 자본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은 채 사업을 했냐고 공격하는 것과 같다. 삼성은 모직과 설탕으로 자본을 쌓은 후 가전 반도체 LCD 등 전자와 금융으로 그룹체제를 갖춰 나갔다. 옛 현대그룹은 건설로 돈벌어 조선 자동차 제철로 사업을 키웠다.

순환출자 등 지배구조 문제는 그룹마다 자율로 결정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삼성도 순환출자 문제는 언젠가는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룹에서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단기간에 윽박질러 이를 해소하라는 것은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하고, 투자를 위축시키는 등 부작용이 더 많다.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30조~40조원의 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건희 회장 등 오너들도 10조원이상 내야 한다. 하지만 이게 가능한가? 삼성전자의 경우 주력품목의 호조로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훌쩍 넘겼다. 이 회장의 지분이 1.7%에 불과하고, 특수관계인 등 오너들의 지분이 5%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단기간에 지주회사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하라는 것은 그룹을 해체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반면 LG는 2001년 일찌감치 구씨와 허씨간 분가에 대비해 지주회사체제를 출범시켰다. LG의 경우 구씨와 허씨가 간에 워낙 복잡한 소유구조로 얽혀있는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게 불가피했다. LG는 당시 재벌 개혁이후 처음으로 지주회사로 전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회사 모범생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경영실적과 지배구조는 별개다. 삼성은 2000년대 들어 그룹경영체제를 바탕으로 사상 최고의 실적을 구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10조원 안팎의 순익을 올렸으며, 지난해에는 무려 17조~18조원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도 2001년 43조원에서 지난해 160조원(추정)으로 4배가량 급팽창했다. 지난해에는 인텔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등극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그룹매출은 지난해 250조원을 넘었다.

지배구조 모범생 LG는 어떤가? LG그룹도 2003년 61조원에서 2009년 125조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도 3.8조원에서 7.6조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주력사인 전자의 실적부진으로 그룹 순익이 뚝 떨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모범답안으로 강조하는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이 경영실적 호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배구조에는 모범답안이 없다. 장 교수가 이것을 모른다면 세계적인 학자답지 않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 전환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고 했다. 우리가 글로벌 기업들을 벤치마킹했던 시절엔 선진국 초우량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베끼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처럼 보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제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이 됐다.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선진국과 신흥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삼성전자의 경쟁력과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하는 단계가 됐다. 선두와 후발주자가 역전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서 ‘코리안 스탠더드’가 새로운 롤모델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장 교수가 삼성의 2세 승계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편협하다. 기업을 애써 키워온 대주주가 자식에게 가업을 잇게 하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자 하는 것은 기업심을 북돋우게 하는 견인차가 된다. 아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면 누가 열심히 사업하려고 하겠는가?

물론 비상장사인 에버랜드의 유상증자를 통해 그룹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현재의 잣대로 보면 편법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상법 등의 법체계로는 불법적인 승계는 아니었다. 에버랜드 파장이후 법 체계가 개선돼 비상장사를 통한 경영권 승계가 어렵게 된 것은 진전된 것이다. 현재의 법체계와 잣대로 경영권 관련 법체계가 미흡했던 과거를 재판하는 것은 정파적이며, 편향된 것이다. 이미 지주회사인 에버랜드를 통해 현실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재용 사장에게 경영권을 내놓고 배당이나 받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삼성의 경우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고, 소액주주, 국내외 기관투자가, 협력업체, 관계 금융회사등도 다양하다는 점에서 ‘포스트 이건희체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장 교수가 이재용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2세가 경영능력을 갖췄다면 얼마든지 승계할 수 있다. 2세들은 아버지 슬하에서 귀중한 경험들을 전수받는다. 명문대를 나온 전문경영인들이 얻지 못하는 소중한 자산들이다. 가업을 이어 회사를 더 키워보겠다는 의지를 무력화시켜서는 안된다.

경영권 승계 후에 실적이 저조하거나, 흔들릴 경우 주주들이 그의 진퇴문제를 결정할 것이다. 선험적으로 2세 승계는 안된다고 못을 박는 것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삼성의 2세 승계를 허용하되 10년 후에 경영 평가를 하자는 것도 도를 넘어선 발언이다. 기업들은 사업을 하다보면 부침을 겪는다. 업종 특성상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다. 신규사업에 대규모 투자가 들어가는 과정에서 주력산업의 재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

경영권 승계 후 10년 후에 경영실적을 평가해서 좋으면 경영을 계속 하도록 해주고, 나쁘면 빼앗겠다는 것인가? 세계적 석학의 아이디어로는 함량미달이다. 주주가 아닌, 제3자가 경영권을 마음대로 탈취할 수 있다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상법상 주주들이 결정할 문제를 정부와 노조 시민단체 등 외부인사가 삼성 오너십의 생사여탈권을 쥘 수 있다는 발상은 정말 정제되지 못한 논리다. 한쪽에 치우친 이데올로기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오너경영이 특징인 재벌은 1997년 외환위기 주범으로 낙인찍혔지만, 역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경제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주요 그룹들은 금융위기 속에서도 수출 호조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사상 최대 매출과 순익을 거뒀다. 외신들도 한국이 신속한 위기탈출을 하는데는 대기업들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하고 있다.

재벌들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것도 희생양만들기와 여론재판의 측면이 없지 않다. 김대중정부와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연대 등 진보 시민단체들은 재벌들이 선단식경영과 황제경영, 차입경영으로 우리 경제를 환란으로 몰아넣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대기업들을 혼내준다며 기조실 해체, 오너 책임경영 강화 등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출자 금지, 부채 축소 등의 개혁채찍을 높이 들었다.

그 결과 30대 그룹 중 대우 옛 현대 쌍용 해태 진로 등 16개그룹이 쓰러졌다. 하지만 재벌 구조의 비효율성 때문에 환란이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재벌개혁은 미국 등 선진국기업들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한국의 재벌들을 견제하기위해 IMF를 통해 압박을 가한 측면도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에서 “재벌들이 90년대 중반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경쟁에 뛰어들었다가 금융위기 관리에 실패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한국 제조업체들은 경상이익률은 낮았지만, 영업이익률(이자, 환차손 등 금융비용을 제외하기 이전 이익)은 국제적으로 높았다는 것이다. 88년부터 97년까지 한국제조업체들은 평균 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 미국(6.6%), 일본(3.3%), 대만(6.5%)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유지했다.

김대중 정부와 진보 시민단체들은 국내기업들의 이같은 사실을 무시한 채 낮은 순이익률이나 경상이익률만 집중 부각시켰다는 게 신교수의 반론이다. 유승민 의원(한나라당)도 KDI 연구위원 시절 “재벌은 환란의 종범이며, 주범은 시스템 위험을 방치한 정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삼성은 한국의 간판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자부심이다. 삼성전자만한 기업이 10개만 있으면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해 수출이 1000억달러(2010년 기준)로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투자규모도 43조원이나 된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12조원), 3위 LG그룹(21조원)을 압도하고 있다. 그룹이 내는 세금도 8.5조원(2009년)으로 전체 세수의 7.1%를 차지했다.

장 교수가 삼성의 통제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개인의 자유 영역이다. 하지만 많은 영향력과 독자들을 갖고 있는 그가 제시하는 해법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인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경제학자로서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아이디어는 다분히 삼성을 국영기업화 내지는 사회기업화하자는 것으로 비춰진다. 가뜩이나 삼성을 건드려서 먹고사는 진보진영 및 시민단체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삼성에선 그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을 정도다.

기자는 장 교수가 그동안 내놓은 책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나쁜 사마리아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을 대부분 구입해서 숙독했다. 그가 더 나은 자본주의를 찾아보자는 것에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통제방안으로 내놓은 것은 궤변이라는 생각뿐이다. 경제학자로서 품위도 없다고 본다.

장 교수가 한국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모르겠다. 영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90년부터 모교인 캠브리지대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어 성인이 된 후 한국에서 생활한 것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모국에 낸 세금은 얼마나 될 까? 삼성 이회장일가가 낸 세금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킷일 것이다. 삼성을 건드려서 존재이유를 과시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성직자들도 얼마나 세금을 내는지 궁금하다.

장 교수가 진보진영의 우상화 작업에 도취해 경제학자로서 정상 궤도를 이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이의춘 편집국장 jungleelee@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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