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시대가 왔다고요? ´이사´가 본격화된 거겠죠." 최근 기자와 만난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부산신항의 ´장밋빛 전망´에 대한 질문에 쓴 웃음을 지었다.
개장 당시 과잉투자설비라는 비난에 휩싸였던 부산신항은 최근 글로벌 부두운영사들이 잇달아 선석을 개장하며, 올해 부산항 전체 물량의 절반 가량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항에 입주한 부두운영사는 현 DP월드, 한진해운신항만 2개사에서 현대상선, PSA가 추가된 4개사로 확대되며, 올해 신항 18개 선석에서 처리하는 연간 물동량은 개장 첫해 23만TEU에서 약 600만TEU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 때문일까. "북항은 가고 신항시대가 도래했다"는 자랑섞인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동안 ´파리만 날렸던´ 부산신항이 최근 눈에 띄는 물량신장세를 나타내는 것은 일단 ´외형상´으로 성과있어 보이는 게 사실.
특히, 부산항 전체 물량인 1천3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의 1.7%를 처리한 2006년 개장 당시와 비교할 때 처리량, 선석규모, 공칭량 등에서 모두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이룬 듯하다.
그러나 정작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물동량 창출 없이 기존 북항 물량을 그대로 옮겨오거나, 저렴한 하역료로 물량을 뺏는 ´출혈경쟁´의 패턴이 반복되는 수준에 불과해 씁쓸함이 묻어난다.
싱가포르항, 상하이항 등 세계 허브항만이 매년 비약적인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부산항의 전체물량은 벌써 몇년 째 1천300만TEU수준에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떠오르는 중국항만에 중국착발 환적물량을 뺏기며 ´피더항만´으로의 추락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오히려 물량을 차지하려는 운영사 간 ´제살깎기´ 출혈경쟁이 격화되고 있어, 부두운영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산항의 경쟁력까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신항의 성장´은 부산항의 성장이 아니라, 단지 도심 내에 있는 북항에서 한적한 곳으로 이사하는 과정에 불과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시내를 휘젓고 다니던 ´거친´ 컨테이너차량들로 인한 부산시민들의 불편을 덜게 됐다는 게 이번 ´이사´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힐 정도니, 부산항 전체의 경쟁력 제고라는 당초 신항 건설 취지는 어디서 찾아야 할 지 의문이다.
어쩌면 이번 신항 건설은 특정 지역민의 교통민원 해결을 위해 정부가 단행한 가장 큰 액수의 투자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동북아 경제권의 관문이자 허브항이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첫 문을 연 부산신항, 그리고 한때 세계 3위 컨테이너 항만의 위상을 자랑하던 부산항.
"본격적인 ´신항시대´가 도래했다"는 자기도취 속에 정작 부산항이 처한 위기와 향후 나아가야할 길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아닐지 씁쓸하다. 이제는 세계 5위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는 국내 최대 무역항, 부산항의 초라한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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