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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학·전자산업 중흥 이끈 구자경 LG 명예회장 별세

  • 송고 2019.12.14 13:01 | 수정 2019.12.16 11:13
  • 손병문 기자 (moon@ebn.co.kr)

1950년 25세부터 45년간 기업 경영 전념…우리나라 산업 고도화 혁신가

2012년 2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연암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2012년 2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연암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상남(上南) 구자경(具滋暻)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LG그룹 창업 초기인 1950년 25세 나이에 모기업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기업 경영에 전념했다.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으로 LG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명예롭게 은퇴한 '참 경영인'이란 평가다.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이 62세를 일기로 1969년 12월 31일 타계함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45세가 되던 1970년 1월 9일 LG그룹의 2대 회장에 취임했다.

공장에서 20년간 생산현장을 지키다 서울로 근무지가 바뀐지 불과 1연여 만에 부친의 유고로 마음의 준비 없이 회장 자리에 올랐다. 구 명예회장은 이후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과 21세기 선진 기업 경영을 위한 혁신의 시대를 펼쳤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입국(技術立國) 일념으로 화학과 전자분야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70여개 연구소를 설립했다. LG의 도약과 우리나라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그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자율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주도한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이 25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1150배 성장했다.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스스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냈다. 경영자로서 업적은 물론 은퇴 후 삶까지 재계의 귀감으로 존경 받아 왔다.

슬하에 장남 故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뒀다. 부인 故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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